너도 자식 낳아보면 다 이해할 거다.

더 이해가 안 가는걸요.

by 샤이어

보통 부모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도 자식 낳아봐라. 그럼 너도 이해할 거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사랑을 듬뿍 주었던 부모가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사실 내가 궁금한 건 정말 사랑을 듬뿍 준 부모도 저런 말을 할까?


아버지와는 결혼식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고, 어머니에게는 어쩐지 측은지심 같은 것이 있어서인지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임신사실과 출산사실 정도만 알렸었다. 그때도 축하한다는 말 외에 방문도, 선물도 없던 어머니. 아버지는 애초에 기대도 안 했으니 되었다. 그 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이 왔더랬다.


'너희 아빠 환갑이다. 어쩔까?'


그 문자를 읽자마자 기가 찼다. 갑자기 연락해서 할 말이 또 허례허식 챙기기구나. 연락도 안 하고 사는데 환갑잔치는 중요했나 보다.

내가 그게 중요하냐고. 아버지얼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했더니 어머니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결혼하고~ 애 낳고~그럼 풀어질 줄 알았더니 너무하네~ 너희 아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내가 어릴 때 그랬듯, 20대에도 그랬듯이 가만히 두면 알아서 마음이 풀릴 줄 안 모양이다. 내 마음속엔 상처가 켜켜이 쌓여서 곪아가고 있었는데.




내게는 지금 18개월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다. 장난꾸러기에 말도 잘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드러눕기를 시전 하는 미운 18개월. 그렇다고 이 조그만 아가가, 이제야 세상을 알아가는 아가가 뭐가 그리 밉겠는가. 때로는 떼쓰는 모습까지도 귀여워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왜 그랬을까. 왜 그토록 마음에 상처를 줬을까.

아, 더 키워보라고요? 아직 너무 애기라서 모르는 거라고요?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도무지 내 자식에게 그럴 것 같지는 않네요.


아이가 잘못했다고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걸로 때렸던 어머니. 그 당시의 내가 너무 어려 기억 못 할 줄 알겠지만, 내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있다. 얼마나 상처였으면 그 어릴 때의 기억임에도 남아있을까. 그때의 방에 있던 길고 큰 쿠션, TV, 비디오까지도 선명하다.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아버지를 챙겨야 했던 딸.

내가 방학 때 아버지가 종종 늦게 집에서 나가는 날이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내 방에 찾아와 "아침밥 안 먹느냐"고 물었다. 밥을 차려놓고 먹으라고 물어본 걸로 들리나요? 아니요, 내게 밥을 차려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차린 밥을 먹고 그릇만 싱크대에 넣어놓고 설거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럼 나는 일하고 들어와서 또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엄마가 불쌍해서 설거지를 해놓았다.


할머니는 항상 나보고 아버지를 챙기라고 했다. 병원에 잘 안 가니까 병원도 챙겨가고. 치과 좀 가게 하고. 밥도 잘 먹는지 체크하고. 집에도 일찍 일찍 다니게 하란다. 매일 나가서 무슨 일 하는지 도통 얘기를 안 하는데, 애미도 남편 다룰 줄을 모르니 내가 좀 알아내란다. 그땐 딸은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지금 떠올리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어린 아이가 다 큰 성인을 챙기라니. 그 다 큰 성인은 눈만 마주치면 지적에 참견만 할 줄 알았지 아이를 돌보지도 챙기지도 않는데 말이다.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간 적이나 있던가.


지적도 참견도 사랑하니까 하는 거라고 한다기엔 정도가 심했다. 나의 모든 것이 지적의 대상이었으니까. 본인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그건 모두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해서 내가 다르게 한다고 해서 욕설까지 해댔으니까.


내 평생 아버지와 함께 식사할 때 맘 편히 먹었던 적이 얼마나 됐을까. 식사시간은 수저 부딪치는 소리, 왜 수저를 그렇게 놓는지, 젓가락질, 밥풀 하나를 왜 안 떼먹는지, 의자에는 왜 그렇게 앉는지 숨결하나까지도 고쳐야 했다.

함께 하하 호호 일상얘기를 한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내가 일상얘기를 꺼낼라치면 그건 왜 그런지, 내가 잘못한 건 없었는지, 결론은 본인이 훈계질하고 싶은 이야기로 뜬금없이 흘러갔다. 일상대화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라리 매일 일 핑계로(핑계였는지 진짜 일을 하긴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참 다행이었다.




나도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낳기 전보다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아들이 내가 본인이 싫어하는 걸 자꾸 하려고 하니까 거부하면서 소리 지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럼에도 아이는 다시 엄마에게 와서 안겼다. 겨우 16개월이지만 본인이 싫어하는 걸 하려 해도 아무리 싫어도 그래도 아이에게는 오로지 엄마뿐이었으리라. 그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엄마는 이런 존재인데... 우리 부모님은 내게 왜 그랬을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뭐가 좋았는지, 요즘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런 게 전혀 궁금하지 않았을까? 요즘 힘들진 않은지, 하고 싶은 건 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뭐든 챙겨주고 싶지가 않았던 걸까?

본인이 골프 치러 다니고 비싼 차를 몰아도 아이에게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가방을 사주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하다못해 아이가 사달라던 만 원짜리 생일선물은 생일날 사다 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전 09화형편없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