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의 영혼을 잇는 릴레이
오늘은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룩백' 세계관 속에 들어가 볼 거야.
이미 재작년에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실사 영화로 제작한다고 해서 많은 영화팬들에게 큰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어!
학년 신문에 그리는 4컷 만화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소녀. 재능의 차이를 느낀 '후지노'가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건네주라는 미션을 받게 되면서 서로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된다.
네 컷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었어?
나는 개인적으로 공모전에 투고할 첫 소설을 열심히 써내려 나간 기억이 떠올랐어.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밤낮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던 내 모습도 이랬겠지.
주인공인 후지노는 학교 내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아이로, 매년 학년 신문에 실릴 4컷 만화를 그려. 그런데 어느 날, 강력한 경쟁자 '쿄모토'가 나타난 거야.
'내가 이 분야에서 최고야'라고 생각했던 후지노는 그 이후로 밤낮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너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몰두해 본 경험이 있니?
아무도 나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남들은 나보다 뛰어나 보이고, 아무리 노력해 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외롭게 보냈던 시간들이 분명 너한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기억해. 다른 누군가도 너처럼 숱한 계절과 고난의 시간들을 보냈다는 걸.
남들이 나를 앞질러 가는 기분을 느껴봤다면 후지노의 심정도 이해가 갈 거야.
죽도록 열심히 해도 재능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지는 기분.
도망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었을 거야.
근데 네가 생각하는 그 '재능'이란거, 정말 확실하게 존재하는 거야?
우리는 나보다 상대가 월등히 우월해 보일 때 느끼는 간격을 두고 흔히 '재능의 차이'라고 말해.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재능의 의미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잠시 제쳐두고 이야기해보자. 과연 우리가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안이나 질투 같은 감정들을 느끼거든.
미래가 불확실한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 같은 거야.
당장 내일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네가 10년, 20년 뒤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을지 아닐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 자신을 스스로의 한계 속에 가두지 말란 거야.
후지노는 졸업식 날 선생님으로부터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쿄모토의 집에 방문하게 돼. 질투심과 열등감에 가득 찬 후지노가 집에 있는 종이로 쿄모토가 방 안에서 그림만 그리다가 죽게 된다는 스토리의 네 컷 만화를 그려. 그 종이를 보게 된 쿄모토가 한 말은
후지노 선생님, 저 선생님의 오랜 팬이에요!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의 팬이라니, 이거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 둘의 관계를 보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우상일 수도 있겠어.
누군가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의 모습에 존경심을 품고,
불행한 것만 같은 내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인생이 되는 일 말이야.
영원한 앙숙이 될 것 같았던 둘은, 이젠 둘도 없는 소울 메이트가 되어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같이 그림을 그리며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작업에 몰두해. 시간이 흘러 둘은 공모전에 입상하여 능력을 인정받게 되고, 곧 '천재 소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까지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만화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지.
둘은 그림뿐만 아니라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며 더욱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는데, 늘 방에만 갇혀서 그림만 그리던 히키코모리 '쿄모토'가 '후지노'를 만나면서 바깥세상의 즐거움을 느껴. 후지노는 그런 쿄모토를 친동생처럼 대하게 되고, 언니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돼. 둘이 함께하는 시간은 영화 속에서 매우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그들이 교류하는 감정선이 꽤나 따뜻하고 뭉클하게 다가와. 후지노와 쿄모토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채색으로 그려낸 연출은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전부 포기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 누군가 "나만 믿고 따라와" 하고서 손을 내민다면
그 손, 잡아보고 싶지 않아?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지만 한편으론 가장 강한 존재이기도 해.
인간이 가장 강할 때는 '내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때'
어머니란 존재가 왜 지구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인지 알 것 같지?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이 두 소녀의 인생도 그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고, 그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게 돼.
평생 같은 길을 갈 줄 알았던 친구가 갑자기 떠나버리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운함을 느낄 거야.
근데 그 친구의 선택마저 존중해 줄 수 있는 게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
모두가 같은 길을 선택할 순 없어.
다만, 인생이라는 종착역에서 다 같이 모이는 거야.
복선의 결말은 쿄모토의 '죽음' 이였어. 쿄모토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한 남성의 흉기 난동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의 모티브가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쿄애니 방화사건'이라고 해.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지노는 그녀가 그렸었던 네 컷 만화의 결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큰 상실감과 자책감에 빠져. 자신과 다른 길을 간 쿄모토를 잠시나마 미워하고 멀리했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울 거야.
영화는 다시 쿄모토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역순행적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쿄모토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장면들은 현실세계와 매우 다르게 묘사돼. 그중에서도 후지노가 쿄모토를 살인범으로부터 구해주는 장면은 아마 쿄애니 방화사건의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도 있을 거야.
쿄모토는 언제나 후지노를 우상이자 나침반으로 생각했고, 그런 그녀를 동경하면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후지노에게 투영했던 것 같아. 후지노를 만나게 된 후로 변화하는 모습에 행복해하던 그녀는 이제 다른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겠지.
쿄모토의 방에 들어가 자신을 줄곧 동경해 왔던 흔적을 보게 된 후지노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야만 했어.
만약 그녀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쿄모토의 인생 또한 가치를 잃게 될 테니까.
두 소녀의 영혼을 잇는 릴레이, 어떻게 봤어?
비록 러닝타임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안에 이야기가 갖춰야 하는 요소들이 전부 갖춰진 훌륭한 플롯을 가진 작품이야.
비단 그림뿐만 아니라 어떠한 분야든 간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고,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던 경험이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 그 과정 속에서 시기, 질투, 열등감, 자책, 후회 등 여러 감정을 느꼈겠지.
누군가는 뒤도 돌아볼 새 없이 달린 탓에 후지노처럼 소중한 사람의 곁을 지켜주지 못했을 거야.
이 영화는 두 소녀의 성장 스토리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상실과 흔적에 대한 고뇌이기도 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앞서 달리는 누군가의 등을 보면서 자랐을 거야.
인생은 이어달리기 같은 걸까?
내가 더 이상 달릴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 뒤에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
상실의 아픔을 뒤로하고도 그림을 그려나가는 후지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뒤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힘이 닿는데 까지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
어렸을 때 아버지의 등을 보며 넓다고 느끼는 건, 긴 세월 동안 온갖 바람을 버티며 달려온 뒷모습이기 때문 아닐까?
뛰다가 도중에 넘어질 수 있어.
힘들면 잠깐 의자에 앉아서 쉬어가도 돼.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마.
네가 끝까지 달리기만 한다면, 지친 너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줄 거야.
우리 모두 결승선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