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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Jun 01. 2023

아침이슬과 옹달샘 사이

 집에 있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카세트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찾아보면 집안 구석 어딘가에 먼지 쌓인 채로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찾으려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엄마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핸드폰을 잘 다루지 못했다. 통화만 했지, 문자도 어색해하셨다.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핸드폰에 노래를 담아달라고 했다. 엄마의 수첩에는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이 적혀 있었다. 파일을 받아 엄마 핸드폰에 넣었다. 노래 듣는 법을 알려드렸다. 엄마는 반년 주기로 방법을 잊어서 재차 묻고는 하셨다. 어쩌다 생각이 나서 듣고 싶은데, 꾸준히 들을 여유는 없어서 방법을 자꾸 까먹는 것이다.


 90년대 어느 날, 엄마가 노래 테이프를 사 왔다. 엄마는 사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알뜰살뜰한 사람이었다. 깜짝 등장한 카세트테이프는 우리 집안에 작은 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플라스틱 덮개를 열면 정갈한 테이프가 다소곳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테이프 중앙에 붙은 스티커에는 수록곡이 나열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돌릴 수 있는 두 개의 톱니 구멍은 누가 봐도 아이들 장난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종이 커버의 내면에는 노래 가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딸깍’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중간에 한 번씩 음이 맞지 않았다. 나랑 동생은 엄마가 틀릴 때마다 푸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엄마도 피식 웃더니, 다음 가사부터는 아들딸 눈치를 보았다. 엄마가 한 소절 부르면 나는 끼어들었다.

 “그게 아니지, 이렇게 불러야지!”

 노래를 빼앗아 불렀다. 다시 엄마가 한 소절 부르면 동생이 나를 따라 했다.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그러면 엄마는 깔깔 웃었다.

 “엄마, 설마 음치는 아니겠지?”

 “엄마가 무슨 음치야!”

 카세트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면 웃음도 함께 재생되었다.


 서울이 고향인 엄마는 제주로 시집갔다. 나와 동생을 제주에서 낳았다. 우리 가족은 포항에서 두 해를 지내고 서울로 갔다. 서울 안에서도 몇 번 이사했다. 아빠는 일 때문에 혼자 제주로 갔다. 우리는 아빠 없이 지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우면서, 작은이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일했다. 공부해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아동미술 교육도 한두 해 받았다.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 했고 동요를 불렀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으니 음치는 분명 아니었다. 딱히 그 일이 좋아서 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열심히 했고, 어린이들은 선생님을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일하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역사 대부분은 엄마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졌는데, 몇 없는 흔적이 남아 작은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음악 공책이 대표적이다. 동요의 악보와 가사를 손으로 쓰고 가위로 오려내 스크랩한 것들이다. 어린이 노래를 가르칠 때 썼던 수업자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원하는 음악을 스마트폰에서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반주 없이 동요를 가르치기도 했다. 엄마가 한 줄 부르면, 아이들이 따라서 한 줄 불렀다. 다음에는 두 줄씩, 네 줄씩 따라부르면서 노래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조금 큰 어린이였던 나도 아이들 틈에 끼어 노래를 불렀다. 동요보다는 만화 주제가가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토끼는 왜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갔는지, 그때는 궁금해해 본 적이 없었다.


 암 환자가 된 엄마는 스마트폰에 관심이 생겼다. 방황하는 검지로 유튜브를 보셨다. 홍콩의 밤거리보다 더 찬란한 화면 속에서 심호흡 한 번 크게 해야 겨우 손가락이 방향을 가리켰다. 혼란을 이겨내고 영상을 틀어내셨다. 암 관련 영상을 주로 보다가 온갖 건강 관련 영상으로 옮겨갔다. 한동안 경제 영상을 보는가 했는데 어느새 정치 뉴스를 보고 있었다.

 “백종원이 이혼했다면서?”

 가짜 뉴스를 덥석 믿어버리는 엄마를 보니, 컴맹이던 사람도 신세대로 만드는 스마트폰과 유튜브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트로트를 들었다. 공책에 가사를 적으며 따라 불렀다. 엄마를 찬찬히 살펴보면 흥이 많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신나는 노래도 표정 없이 부른다. 옆에서 보노라면 참 어색하다. 다 부르고 나서 티 나지 않게 미소 한 번 지으면 그걸로 끝이다. 만족하는 엄마를 위해 나도 이제는 노래를 빼앗아 부르지 않는다.

 엄마에게 노래는 일종의 수련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옛날 엄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엄마는 아이들에게 수없이 불러줬을 것이다. 일로써, 벌이로써, 아들과 딸을 키우는 방편으로써.

 유튜브는 끝이 없기에 엄마의 스마트폰에서는 옛 노래도 흘러나왔다. 양희은 노래도 무심결에 지나갔다. 반복해서 듣지는 않으셨다. 슬쩍 물어보니 엄마는 양희은 노래 테이프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음치라고 놀린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세월이 무심하다. 스마트폰 바꿀 때처럼 갈아 끼울 수 있으면 유심할 수 있을 텐데. 기억의 테이프를 되감기에 엄마의 손은 여유가 없었다.


 옹달샘의 토끼는 깊고 어두운 밤을 보내고 어른이 되었다. 아들딸은 아직 자고 있는 어느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났다. 씻겨지지 않는 삶의 무게는 삼키고 잠에서 깨기 위해 세수하러 갔다. 산바람이 옹달샘에 파동을 일으켰을까,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었던 걸까. 토끼는 조금 더 자고 싶었나 보다. 세수해서 잠을 깨우는 대신 마른 목만 축였다. 다시 누울 수는 없지만 잊어버린 옛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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