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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May 29. 2024

내 사랑은 왜 물이 아닐까



상대가 누구든 알맞게 모양을 잡는 물의 모양을 지닌 사랑이고 싶었다.

동그란 사람을 만나면 모습을 동그랗게, 세모낳게 모난 부분이 있는 사람에겐 같은 모양으로.

그렇게 비슷하게, 또 알맞게 어울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구색을 맞춰 동그라미로 형태를 바꾸려고 해 봐도 어느 한 구석에 있는 각진 부분은 숨기지 못한다.

원형처럼 둥글게 사랑을 빚어가고 싶지만 날카로운 예각에 모두가 상처입고 떠났다.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예민함을 어떻게든 깎아보려 붙드는 자가검열의 시간.


어느 사랑에서나 난 슬픈 사람이었고 상대는 화난 사람이었다.

슬픔과 화남은 대립할 수 없다.

슬픔과 슬픔, 화남과 화남은 싸울 수 있더라도 

다른 감정 안에서 페어플레이는 없다.

같은 결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내가 계속 슬픈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화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한 번이라도 상대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질러 봤다면.


실현되지 못한 상상의 후회는 마음에 무겁게 자리를 잡는다.

불안과 걱정이 달라붙어 점차 몸집을 불린다.

혼자가 되는 불안을 머금은 마음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무겁다.

언제나 마음에서 쭉 짜내 가벼워질 수 있지만

섬유질 곳곳에 묻은 얼룩덜룩한 흔적은 지워내기 어렵다.

흐르는 물에 온몸을 내던져 또다른 것을 머금지 않는 한

불안의 색과 형질은 나의 마음에 여전하다.

설령 새로운 물질을 맞이한다고 해도

나의 마음 이곳저곳에는 불안의 잔재가 도사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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