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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Dec 02. 2024

처져가는 마음



     

날씨가 오락가락했던 이번 주말, 룸메인 친구와의 대화를 오래 남기고 싶어 쓰는 글.

늦은 오후, 점심으로 몸보신용 삼계탕을 거하게 먹고 미라보 쇼콜라에서 따뜻한 민트초코를 마시며 넌 내게 알 수 없는 질문만 남기고 하염없이 울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라고 말하고 지나쳤는데 후에 그러지 못해서 다시 감정을 끌어올려본 적이 있느냐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그럴 수 있지, 라고 대답했는데 감정의 잔재가 남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걸까. 같은 나라의 말로 소통하는데 웬일인지 그 말이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무슨 말일까. 깊이 물어보려 재차 묻고 내가 해석한 것이 맞냐며 수많은 물음표를 보였더니 고개를 저으며 너는 이해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물으니 하나씩 설명해 주더라. 그냥 그럴 수 있지 라는 말로 그 상황을 넘겼는데 나중에 와서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친 것 같은 경험. 쉽게 설명하자면 이거다. 그러면서 아픈 동생과 부모님의 이야기를 몇 마디 얹었다. 나는 네가 너무 안쓰럽다. 조금 더 격식있는 삶이라고. 나보다 더 갖춰져있는 환경이라고 매 순간 너를 부러워했던 나의 모습을 조금은 반성했다. 안아 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뭐든 처하지 않은 상황의 인간은 없다.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또한 이런 것. 


네가 가진 중압감, 불안을 들으며 공감을 너무 깊이한 나머지 나까지 밑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넌 너의 이야기를 소진하며 우느라, 나는 그 일에 공감하며 경청하느라. 서로 지쳐 집에 돌아와 늘어지게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밤산책을 한 뒤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깊이 있는 대화의 총 집합체 같던 주말의 이야기가 너무 깊어 그만 기억속에 사라질까 서둘러 남기는 글이기도 하다.




"넌 요 근래 언제 가장 행복했어?" "널 행복하게 하는 건 뭐야?"

질문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근래에 행복했던 나날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너와 신사동에서 티 페어링을 즐기고, 연남동에서 오며가며 보던 칵테일바를 갔던 날, 혹은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부산에서의 2박 3일, 가장 최근에는 에어팟을 선물 받았던 날, 브레이크타임을 뚫고 점심을 먹으려 방황하던 비 오던 날 한 번은 가 보자고 했던 태국 음식점에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대접했던 식사. 등등...


그런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바람에 하나씩 말로 읊다 보니 하반기 타임라인이 자동으로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럼, 그 날들의 공통점은 뭐라고 생각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어쩜 저런 질문을 고민도 없이 바로 물어볼 수 있는 거지, 나도 답을 한 뒤에 네게 좋은 질문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네가 준 숙제 같은 질문을 풀어보려 애썼다. 

공통점.. 뭐가 있지. 그냥, 예상하지 못한 하루의 행복함? 가게마다 사장님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던 점, 그리고 각각의 하루는 나름의 계획대로 흘러갔다는 것. 생각해 보니 공통점이 즐비했다. 그렇네. 내가 좋아하는 날들은 이런 하루였어. 내가 행복해했던 날들에 항상 네가 있었다는 것도 글을 적다 보니 깨달은 점 중 하나다. 



이야기가 점차 흐르다 보니 깊어지고 길고 긴 밤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행복을 느낀 날도 있었는데 요새는 자꾸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8월 말까지만 버티자. 무조건 1년은 채워야지, 라는 마음으로 살다가 바로 이직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포트폴리오에 끊임없이 매달렸다가 웨비나, 밋업, 각종 행사들에 참여하려 애쓰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뭐랄까. 뭔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지쳐버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일종의 번아웃?

사실 이전 직장에서는 원하는 직종으로 옮기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3년을 몸담아왔던 업계를 떠나오면서 취준 기간을 1년 가졌다. 취준을 한 지금에서도 지금 회사에 안주하고 고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끊임없이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다. 내가 진짜 원해서 시작한 마음이었는데 나중 가서는 강박에 가까운 것이었나, 최근 깨달았다. 곧 시작하는 포트폴리오 과외를 앞둔 상황에서도 나는 지속적으로 불안해했던 것 같다. 워홀을 앞둔 상황에서 과연 이렇게 큰 돈을 쓰는 게 맞을까. 해외 취업은 어떻게 할 수 있지 같은 것들. 삶의 목적이 디자이너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이루고 나니 마음이 허하기도 하고, 당장 무엇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치열하게 고민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안 기존의 열정도 사그라들 정도로 지친 것 같다고. 그런 말들을 나눴는데 이 역시 말을 하면서 스스로 정리가 됐다. 요새 내가 이런 상태였구나 하고. 그렇게 기다리던 겨울이 왔음에도 이전처럼 들뜬 마음이 크지 않았다. 나이 앞에 초연해진 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눈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첫눈으로 3일간 눈이 내렸음에도 와, 눈 내리네. 하는 마음 뿐 신나게 밖에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놀아야지 하는 마음이 이상하리 만큼 이번 겨울엔 없었다. 그런 마음들도 다 내가 지쳐 그런 것인지, 아님 서른을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 동심이 그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인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랑하는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 만큼은 항상 한결같을 줄 알았다.


항상 여기저기 들쑤시는 듯한 나의 감정 고해를 마치고 친구는 하나씩 짚어가며 나의 상태를 객관화하려 애썼다. 그 마음보다는 이러해서 이런 게 아닐까. 라고 넌지시 주는 힌트 같은 말들로. 그래서 내가 너와의 대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네 대답들을 듣고 있노라면 녹음해 뒀다가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냥 휘발되어가는 말들이 아깝다고 매번 느낀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현존하지 못한다는 것 아닐까. 친구의 진단은 바삐 살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하는 일에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봤자 넌 내일 모레 서른인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한 20살에 디자이너일 뿐이라고. 뭐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아무 경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스물의 상태일 뿐인 건데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다고 했다. 본인 부모님도 비슷한 업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똑같이 스물에서 시작하는 거나 다름 없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그래, 너무 급히 마음 먹진 말자. 때가 되면 묵직하고 알찬 열매가 될 테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대화의 중간 즈음에 네가 아까 오전에 내게 물었던 질문에 했던 답을 조금 수정했다. 

사실 나는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하고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ㅡ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그저 내가 갖고 살아가는 모토 중 하나일 뿐인데 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는 게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그래서 네가 묻는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고백했다. 

짜증스러운 상황도, 나와 부딪히는 직장 동료도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으로 포용하기엔 내가 아직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데일 카네기가 말했듯 난 나기 때문에 나를 너무 사랑한다. 내가 중요하다. 그 마음을 뛰어넘어 나보다 타인을 사랑하고 관찰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난 아직 멀었다. 말로만 나보다 타인을 더 생각해서 그들에게 맞추기 바빴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변명일 뿐, 내가 나를 생각하느라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나의 모습이 싫어서, 그런 나쁜 이미지로 비춰지는 게 싫었을 뿐 그들을 진정으로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종의 위선 같은 것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사는 게 나에게 상념하고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보기 싫은 모양새처럼 족족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럼에도 난 이런 사람이구나 고백할 수 있다는 것에서ㅡ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출근을 앞둔 주말의 밤은 깊지만 너무 짧다. 내일의 일정이 너무 많아 또다시 변명하는 마음으로 몸을 뉘였다. 잠이 쏟아졌다. 자기 아쉬운 마음에 오가는 시덥잖은 말들을 자장가 삼아 새벽 2시경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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