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분에 넘치는 행복도 있었지만 말로 못할 아픔도 있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항상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조금씩 부서져 떠난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누군가를 그 뜨거운 불속으로 또 떠나 보냈음에 혼자 아파했다. 녹진해진 감정을 눈물로 흘려보내고 나니 시원함과 헛헛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공간에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섰다.
이전부터 난 늘 그래왔다. 명절의 왁자지껄했던 소음이 사라지고 적막이 찾아올 때의 두려움, 익숙한 환경을 떠나가는 것에 대한 막막함, 연인과의 이별, 하다 못해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올 때 등등 감정의 블루를 누구보다 크게 느꼈다. 감수성이 커서 그런지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꼈다. 뭐든 시각적인 자극에 예민해 한 번 보면 잘 잊지 않기 때문에 처한 우울함이나 슬픔도 길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10년을 함께 반려견 꿍이와의 이별은 나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했다. 나는 지금 본가에 사는 것도 아닌데 꿍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큰 허망함을 느꼈다. 외출을 하고 와서 집에 들어설 때도 꿍이가 중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쳐다볼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러다가 아, 하고 잠시 당황한다. 이제 없구나. 빈 집에 들어가더라도 적막을 깨는 웃음이나 반가움을 보일 존재가 없는 거구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한줌의 재가 담긴 나무 상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거기선 정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길로 급하게 옷가지를 챙겨 차를 끌었다.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냐면 뒷좌석에 엄마가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고 출발하려고 했었다. 급한 마음과 달리 금요일 저녁의 퇴근길은 너무나 붐볐다. 나름 지름길로 가 보겠다고 경로를 바꾸면서도 이게 나중에 나의 발목을 붙드는 후회가 되지는 않을까, 핸들을 땀으로 적셔가며 정신 없이 차를 몰았던 것만 기억한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병원에서 오는 전화는 잦아지고 우리는 모두 마음이 급해졌다. 떠나려는 너의 곁을 지켜주지 못할까 봐. 병원 근처에 다다라 엄마와 언니를 먼저 내려주고 주차장을 10분 넘게 헤매고 나서야 병원 수술방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눈도 감지 못하고 푸르딩딩한 혀를 내민 채 누워있는 너를 마주했다. 연결된 기계는 이미 한 줄인 채 미동도 않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쓸쓸하게 가버린 네 등을 어루만져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눈도 못 감고 간 게 곁에 없었던 우리 탓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분명히 괜찮다고 했는데 파랗게 질린 혀가 그간의 고통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기분 탓이었는지, 아님 너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미안함에 너를 흔들면서 꿍아... 꿍아... 미안해. 하는데 작게 낑... 소리를 두어 번 들었던 게 아직 우리 애가 가지 않았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실감나지 않은 죽음이었다. 병원 측에서 수습해 주시겠다고 한 걸 끝으로 모두 나와 눈물로 적막을 채웠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내년 워홀을 나가기 전에 마음에 걸렸던 존재 중에 꿍이도 있었다. 노견인지라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떠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다. 나이가 들고 중성화 후에 살이 급격하게 찌면서 꿍이는 숨쉬는 걸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도 기관지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해를 거듭할 수록 증상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할딱할딱 쉬던 숨은 이내 한 번에 꼬옥 쥐어짜듯이 쉬는 숨으로 바뀌었고, 잠깐 들이마실 때마다 버거워했다. 마치 뒷사람에게 쫓기듯 하는 수영처럼. 지속적으로 다이어트 사료도 먹여 보고 협착증 약도 먹이고 관련된 영양제를 사서 먹여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슬개골 수술로 산책도 한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 생각보다 감량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더 진행이 된 건지 숨을 쉴 때마다 탄산 소리처럼 가늘어지더니 결국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꿍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꿍이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날 오전이었고, 그때만 해도 난 회사에서 멀쩡히 일을 하고 있었다. 기분 좋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언니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주말부터 꿍이가 숨을 잘 못 쉬었는데 아침에 보니 많이 심각해져서 엄마가 지금 병원을 데리고 가고 있다는 것. 그 길로 회차에 반차를 내고 인천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다행히 내가 도착했을 땐 꿍이가 안정 상태에 진입했고 산소방에서 산소를 주입하면서 잘 버텨 주고 있었다. 흥분하면 호흡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고 해서 먼 발치서 봤던 게 꿍이와의 마지막이었다. 나중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까이 가서 눈인사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멀리서 꿍이 상태를 보고 집으로 가 다음 날 면회만 생각하고 있었다. 도착해서도 걱정한 언니가 연락했을 때만 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씀해 주셨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와 보셔야 할 것 같다고.
엄마는 아직도 그냥 네가 너답게 간 것이라며. 걱정도, 시름도 주지 않고 간 거라고 하지만, 정말 나를 미치게 하는 건 그 흔한 아픈 티 한 번을 안 내다가 뭐가 그리 급한 지 우리도 보지 않고 떠나간 것. 그게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슬플 뿐이다. 이후에 엄마, 언니, 큰이모 순서대로 꿈을 꿨다고 한다. 꿍이가 한창 예뻤을 때 모습으로 신나게 뛰노는 꿈이었다고. 다들 비슷한 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전부터 난 떠나간 존재들을 다시 마주하는 행운은 없는 모양이다. 내심 꿈에 나와 주길 바랐는데 내 꿈에 들르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곳에선 비로소 편안해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