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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Oct 10. 2024

나도 나를 몰라

심리상담 2회차 심린이

그냥 요즘 들어 더 많이 드는 생각인데. 방구석에서 유명한 심리전문가, 정신과 전문의를 병원을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내가 모나게 생각하는 나의 면의 시작을 가끔 곱씹어본다. 사실 중학교 때까진 정말 내성적인 편이었다. 고작 1살 터울인데 언니와 내 성격이 정반대라 주변 어른들이 나의 소심함을 걱정할 정도였다.


친구는 정말 깊게 사귄 친구 몇 명이 다였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학교를 다녔다. 그 와중에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종종 교내, 외에서 상을 탔고, 갱지가 다 일어날 정도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캐릭터 그림으로 반 친구들이랑 게임도 만들며 지냈다.


 소꿉장난 같던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1지망이 떨어져 아무도 모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소문으로는 이상한 학교로 떨어지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당시 괴담 같던 얘기가 나에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나 또한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결국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주변 어른들의 걱정 떨치려 노력했다. 정말 잘 살아야겠어서, 집안의 우환에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서였다. 서툴지만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을 했고,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둘째라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어울렸고, 선생님, 선배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구김살 없는 사람이 됐다. 


고등학교를 기점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그대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손해 보더라도 하기 싫은 부탁을 들어주고, 싫은 소리를 하면 어렵게 사귄 친구들을 떠나보낼까 싶어 말을 열심히 골랐다.  20대 초반까지도 사람을 좋아하니까 이 성격으로 사는 게 나쁘지 않겠다, 하다가 졸업 때쯤 돼서 인간 관계에 환멸을 느낀 이후로 그 노력들이 몹시 피곤해졌다.


20대를 보내는 시간 내내 어색할 수 있는 자리에서 광대를 자처하고,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았었는데, 문득 깨달았다. 사실 그건 내 방어 기제였다. 그냥 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더 나를 낮추고, 끊임없이 사람에게 친근해지려 노력했던 거였다. 룸메는 나한테 그냥 본인한테 하듯 사람을 대하라고 하는데,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기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이것 또한 나의 페르소나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미 깨우쳐버린 살아가는 처세술인지 모르겠다.


요새 곧 30대의 나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한 것 같긴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실 30이 넘어도 난 아직 청춘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인데 벌써 성인이 되고 나서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속절없이 빨리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었다. 29년을 나로 살아왔는데 도무지 나를 모르겠다. 그나마 깨달은 거라곤 내가 정말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 최선보단 차선을 택하는 나. 나보단 남에게 맞추는 나. 이런 모든 것들을 30대엔 떨쳐내고 스스로를 위한 행동과 말을 할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떨지 몰라서 더 살아가고 싶고, 더 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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