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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면허를 스무 살에 땄다. 그리고 쭉 장롱면허였다가 경찰학교에 가면서 다시 운전연습을 했다. 경찰학교에서는 안전운전교육이 필수였는데, 그때서야 제대로 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차가 없어서 가끔 빌려 타는 차를 이용할 때 빼고는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탄 차종을 말하라고 하면 아반떼 아니면 소나타다. 순찰차가 내게는 가장 친숙한 차종이 되었다.
문제는 나의 운전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주차를 하고 내리막길에서 P기어를 안 넣고 그냥 내린 일이었다. 굴러가려는 찰나에 보고 차를 세우긴 했는데, 두고두고 어이없다고 욕을 먹었다.
"야, 너 운전이 그게 뭐야!", "운전도 못하면서 어떻게 경찰을 하겠다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혼났다. 그 사건 외에도 실수는 계속 이어졌다. 후진할 때 사이드미러를 전봇대에 긁어서 흠집을 낸 적도 있고, 신호등 앞에서 시동이 꺼져서 뒤차들이 빵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식은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의 한숨 소리와 탄식이 차 안을 무겁게 만들었다.
1인분 제 몫을 못하는 신임인 데다 운전까지 못한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실수들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매일 출근하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내가 과연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내겐 '사수'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꾸짖는 선배들만 있었지, 진심으로 믿고 따를 만한 사수는 없었다. 질문하기도 눈치가 보였고, 실수라도 하면 바로 면박이 돌아왔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인사이동 때문이었다. 새로 온 선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달랐다. 다른 선배들처럼 위압적이지 않았고, 말투에도 여유가 묻어났다. 서울 억양이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이, 힘들지? 다 그런 거야"라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이분은 경찰에 들어오기 전 나이키 모자를 뒤집어쓰고 한때 댄스로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분이었다. 지금은 경찰모자를 각 잡아 쓰고 시민의 안전한 밤거리를 지키는 그런 분이었다.
댄스를 하셨던 분이라 느슨한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이 분은 군기를 잡지 않았다.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농담도 곧잘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 신고 출동을 나가는데, 내가 또 운전 실수를 했을 때였다. 다른 선배들이었다면 바로 화를 냈을 텐데, 이분은 "괜찮아, 괜찮아. 교대하자. 내가 운전할게. 너는 옆에서 쉬어" 하시면서 오히려 나를 진정시켜 주셨다.
그분과 함께 근무할 때는 정말 편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었고, 실수를 해도 끝까지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가끔은 "너 요즘 많이 늘었어. 이 정도면 곧 혼자서도 잘할 거야"라며 격려도 해주셨다.
아마도 이 선배의 흥미로운 과거 이력이 인간적인 따뜻함을 유지하게 해 준 게 아닐까 싶다. 춤을 추던 자유로운 영혼이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서도 경직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선배와 함께 근무하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운전 실력도 늘었고, 신고 처리할 때도 덜 긴장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이 일에 안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이 줄어들었다.
좋은 사수를 만나는 것과 못 만나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이분이 없었으면 나는 아마 그때보다 더 빨리 관뒀을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 좋은 선배를, 아니 그냥 괜찮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경찰 같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 선배들은 "내가 신임 때 고생했으니까 너도 고생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 고통의 경험이 합리화되어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이것이 다시 다음 세대에게 반복되는 악순환. 이런 방식으로는 조직 문화의 개선이 어렵다.
나도 나중에 선배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좋은 사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배려가 필요하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후배를 보며 화를 참아야 하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가르쳐줘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댄스 하던 선배 같은 사수가 되지 못했다. 선배 직급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보다 늦게 들어온 친구들에게 잘해줬는지 돌아봤을 때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워낙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업무 외적으로는 '걔들도 어차피 불편해해'라며 피했다.
내가 신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면서도, 후배들에게는 그런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 내 일 처리하기도 바빠서 후배들은 뒷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기적이었다.
그런데 가끔 그때 함께 근무했던 후배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나처럼 헤매고 있었을 그들에게 댄스 하던 선배 같은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게 아쉽다.
좋은 사수를 만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나였지만, 정작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는 못했다. 이것도 어쩌면 조직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