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단골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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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내가 일하던 파출소는 같은 도시의 다른 관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고가 적었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 적은 신고 중에서도 8할은 매번 보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파출소만의 '단골손님'들이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전날 신고 현황을 보면 "아, 또 이분이구나", "어제도 여기서 신고 들어왔는데" 하는 식으로 뻔한 패턴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정해진 사람들, 정해진 장소에서만 신고가 들어온다는 걸 파악했다.

가장 대표적인 단골은 사사건건 민원을 넣는 한 분이었다. 그분의 민원은 대부분 경찰이 처리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하거나 구청에 신고해야 할 일들을 모조리 112에 신고하셨다.

또 다른 단골은 매일 술에 취해 파출소에 와서 술주정을 부리는 분이었다. "경찰들이 뭘 알아!",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하면서 고성을 지르며 파출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드셨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 시계를 보며 '아, 곧 오실 시간이구나'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어제 분명 고개를 끄덕이시며 알겠다고 하셨는데 왜 또 같은 일로 신고하실까?' 계속해서 반복되는 신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우리가 친절하게, 때로는 어르듯이 설명해 드렸고, 상대방도 이해했다고 하셨는데, 며칠 지나면 또 같은 문제로 신고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가 싶어서 더 자세히, 더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사람이 같은 문제로 계속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내 주취자 분이 파출소에 찾아와서 평소보다 더 심하게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달래려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결국 서로 고성이 오가며 대치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선배님이 조용히 다가와서 그분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 "아저씨, 담배 한 대 피우고 이야기해요." 말투도 부드러웠고, 강요하는 느낌이 아니라 제안하는 느낌이었다.

놀랍게도 그분은 담배를 받으며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선배님은 그분과 함께 파출소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소리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10분 정도 지나서 들어온 그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 마셔서..." 하며 조용히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무언가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해결하려고만 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 후로 단골손님들을 대하는 내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매번 같은 문제로 오시는 분들도, 사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보다는 공감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문제의 완벽한 해결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고, 자신의 감정이 타당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도 반복되는 신고들이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이 대체 왜 계속 이러는 걸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파출소가 그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문제 해결보다는 소통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이 직업의 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창한 정의 실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한 선배가 민원인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깨달은 건, 복잡한 매뉴얼보다는 진심 어린 경청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