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기초공사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현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한편에서 발전 주기기 기자재 공사로 대형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자재 납품을 위한 대기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현장 내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잠시 모였다.
“현장 여건이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정이 급박해 서둘러 오긴 했지만 일이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차장님, 이러다 사고 납니다.
우리 현장이 크레인 바로 옆이라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현장 담당자 만나서 오늘만이라도 조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탈황·탈질설비는 발전 주기기인 보일러 측면에 위치하고 있어
발전 주기기의 기자재 공사를 위한 대형 크레인 바로 옆이 우리 현장이었다.
얼마의 무게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기자재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곳 아래가
우리의 현장이었다.
공사 담당자인 나로서도 작업을 강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발전 주기기 공사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탈황·탈질설비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정우입니다.”
“예, 그런데요”
대답부터 시큰둥하다.
어떡하겠나, 가장 중요한 주기기 담당자이기에 얼마간의 텃새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희가 오늘부터 기초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현장이 크레인 바로 옆이다 보니
너무 위험해서요.“
“그래서, 뭘 어떡하라고요”
“자재 옮길 때 크레인 방향만 반대쪽으로 돌려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아, 이리가라, 저리 가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공사 늦어지는 것도 짜증 나는데
크레인도 돌려라“
“바쁘신 것 같아 타협점이 없을까 상의하려 왔는데 말씀이 꽤 불편하네요.”
“크레인 못 돌리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답답하다.
싸워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반장님, 크레인 반경 바깥부터 작업 시작하게 준비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잘 안 됐나 보네요?”
“예, 발주처 담당자 만나서 조정해 보겠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바깥쪽부터 위치 잡고 시작하죠.“
“차장님만 괜찮으면 저희가 만나볼까요?”
“아닙니다. 괜히 일 시작도 전에 기분 나빠요.
제가 발주처 담당자 만나서 조율을 하던 저희가 철수를 하던 선택 하라
이야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장 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발주처 현장 사무실로 향했다.
현장 사무실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고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외 4개 업체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했다.
“아니, 발전 건설공사 처음해요?
가뜩이나 꼬여있는 현장에 4개 업체를 한꺼번에 들어오라 하면 일이 됩니까?“
“주기기가 현장 다 차지하고 마음대로 하라는데, 일을 하라는 거예요?”
“우리끼리 이러지 말고 다들 철수합시다.”
“어, 저기 정우 왔네, 정우야 이게 현장이가? 난장 판이가?”
“우리 막내 왔나? 뭐고, 오늘 5개 업체 한꺼번에 들어오라 했나?“
발주처 건설팀장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형님들 커피는 한잔씩 하셨습니까?”
“정우야, 커피가 문제가 아니다. 현장 아직 안 봤나?”
“봤죠, 봤으니까 이리로 왔지요,
여기서 화만 내실 게 아니고 커피 한잔 하시면서 의논해 봐요.“
“그래, 우리 막내 왔으니 커피 한잔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봐야 5분이다.”
건축 담당선배의 마무리로 현장 사무실 앞 자판기로 모두 향했다.
건설공사 현장 내 각 공정 별 업체 담당자가 8명이었고, 다들 건축, 주기기, 순수 등등의 공정 명으로 불렸다.
그중 경력이나 나이로 내가 제일 막내여서 탈황·탈질이라는 공정 명보다는 이름이나 막내로 불렸다.
“정우야, 이게 말이 된다 생각하나? 주기기 너무 한 거 아니냐?”
“정우야, 기초 공사하러 들어왔나?”
“막내야, 주기기 바로 옆이 네 현장인데 공사되겠냐?”
선배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형님들, 한 명씩 물어보세요, 허허
기초 공사 시작하려고 들어왔고, 주기기 담당자랑 푸닥거리하고 왔지요. 허허“
“막내야 크레인 밑에서 일하는 거 아니다. 큰일 치른다.”
“크레인 반경 바깥부터 시작하라 말씀드리고 조율하러 왔습니다.”
“우리 막내가 건설팀장이었으면 잘했을 텐데”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정회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철수하겠다며, 큰 소리는 치셨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공사는 시작했다 했다.
건설팀장 주관으로 공정회의가 시작되었다.
다들 각자 공정 담당자이면서 회사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하여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주기기 기자재 납품이 늦어지며 일정이 지연된 탓이라 했다.
공정회의는 주기기와 가장 인접해 있던 우리부터 시작되었다.
“크레인 반경 바깥부터 작업은 시작하였으나 내일쯤 크레인 방향이 반대쪽으로
선회되어야 작업이 가능합니다.
일정은 3일이나 조출, 연장하여 내일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은 크레인 방향을 반대로 선회하겠습니다.
저희 직원이 무례했다 들었습니다. 제가 사과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조출, 연장을 결정한 터라 마음이 급해 서둘러 회의에서 일어났다.
“반장님, 크레인 방향은 내일 선회하기로 협의는 했는데 조출, 연장을 하더라도
내일까지 마무리 가능할까요?“
“기초 공사 이틀이면 다 하죠, 조출, 연장 없이 마무리 지어볼게요.”
현장 반장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바깥쪽부터 진행한 공사는 그날 오후 4시쯤 마무리되어 갔다.
내일은 크레인 방향이 선회할 예정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현장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쯤 건축 담당자가 나를 찾았다.
“막내야, 우리 오늘 회식하기로 했다.”
“갑자기 회식해요?”
“우리 막내 왔으니까, 지갑은 놓고 오너라, 저녁 7시 장소는 형이 문자 할게.”
“예”
현장 마무리를 마치고, 약속장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