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아주 가끔씩 엉뚱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이번만큼은 나의 불길한 예감이 틀렸기를

by 갬성장인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지 아내가 앞치마를 벗어 들고 서둘러 다가온다.

“기다리던 곳이 아니야?

면접 보자고 했다며, 왜 시큰둥해, 별로야?“

“아니, 그건 아닌데, 좋은 곳이긴 한데”

“썩 내키지 않는 곳이면 가지 않아도 괜찮아, 기다려보자”


나의 머뭇거림에 아내는 답답했지만 기다려주기로 한 눈치다.

“연락 온 곳이 다른 계열사여서”

“무슨 이야기야?

전에 있던 거기 다른 계열사라는 이야기야?“

“어”

“당신 마음 가는 대로 해, 괜찮아!”

“고민해 볼게”

아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슷한 연봉과 처우를 받기 위해 지원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소위 재계순위 30위 이내의 곳이었다.

그중 재계순위 5위 이내에 계열사만 50여 개가 넘던 그곳을 피해 가며,

입사지원서를 제출할만한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자발적 퇴사를 선택하였던 나였기에 설마, 설마 하며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었던 듯하다.

자발적 퇴사 후 그룹 내 타계열사의 재입사까지 막는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고작 면접인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닐까

일단 가보자,

고작 면접이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고민할 일이었을까 싶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


아내에게 면접을 보겠다 했다.

아내는 마음 가는 대로 하라 했다.

계열사만 다를 뿐 같은 그룹이다 보니 면접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은 퇴사 이유였다.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을 해야 하나,

아님, 솔직히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을 한들 금방 들켜버릴 거짓말이었고,

솔직히 이야기를 한들 부적응자로 낙인찍혀버릴 것 같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래, 혹, 퇴사이유를 묻는다면 담백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직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맞지 않아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어

퇴사를 결정했다고‘


고민하며, 면접을 준비했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나의 간절함 때문이었던지 약속했던 면접 일정이 성큼성큼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긴장하지 말고,

당신은 최고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알았지?“

“엉, 고마워!”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하루가 밝아 있었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간략한 보안절차를 마치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세 명의 면접관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김정우님”

“예, 안녕하세요”

간략한 인사를 나누고 면접관 소개가 있었다.

면접관은 공장장, 인사지원팀장, 환경안전팀장 총 세명이었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니, 어김없이 예상했던 질문이

“김정우님 저희랑 인연이 깊네요, 계열사기는 하지만 전 직장이 허허허

실례가 안 된다면 퇴사 사유를 여쭤도 될까요?“

“당시 직무와 환경 등 여러 부분이 저와 맞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같은 어려움이 있다면 같은 결정을 하게 될까요?”

“지난 결정을 반추하여 슬기로운 결정을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번은 주위 동료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 생각하면 될까요?”

“예”


그 이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려운 질문이 꽤 있었지만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려 했다.

약 30여분이 지났을까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아니 보내고 있다 생각합니다.

항상 약간의 후회 또한 남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부족하지 않게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며, 주저주저하기도 했지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란한 질문이 많았을 텐데 솔직히 이야기해 주셔서 저희 역시 감사드립니다.”

면접 내내 조용히 듣기만 하던 공장장이 마무리해 주었다.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었다.

최근 느껴보지 못한 묘한 흥분과 안도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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