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호르몬 대전
새 학년이 시작된 후 한 달 여가 지났습니다. 이제 학생들과 긴장감속에 서로 탐색하며 조심하던 학년 초 허니문 기간이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슬슬 아이들의 본성이 드러나며 선생과의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게다가 올해 맡은 두 과목 여섯 반 수업이 모두 12학년 입시반이다 보니 작년까지 멀쩡(?)했던 아이들도 스트레스로 인한 잦은 짜증과 예민함으로 신 선생의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이번주에는 같은 녀석과 별것도 아닌 일로 두 번이나 대립했는데요, 그러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뭐 어쩌겠어요. 달리는 수밖에… 하하.
달리기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연 이 일이 이렇게까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콸콸 분비시켜야 할 사안인지 모르겠더군요. 비록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미성숙한 고등학생이 흥분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배설하듯 내뱉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신 선생은 봄철 꽃가루에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것이 호흡기나 음식, 또는 피부 접촉을 통해, 사실은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이 들어왔을 때도 우리 몸에서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재채기나 눈물, 콧물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려 하는 현상이라고 하던데요… 우리가 정제되지 않은 말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몸이 어떻게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게 되었는지 진화생물학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상상을 해보자면 수렵채집 하던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맹수와 맞닥뜨렸다거나, 집단생활을 하며 우두머리에게 머리를 조아릴지 아니면 싸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처럼, 본인과 가족의 안전과 안녕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당연히 생존을 위해서 이러한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꼭 필요하겠죠. 하지만 저의 학생들이 종종 내뱉는 짜증 섞인 말들은 선생으로서의 저의 안전과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마치 봄철 꽃가루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그때 지켜보는 다른 학생들도 모두 교사의 방침을 인정하며 저를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헛소리하는 유다에게 예수님이 하셨듯 “그건 네 말이다.” 하고 무시하면 되는 건데요, 왜 굳이 다음날까지 아까운 중년의 에너지를 팍팍 써가며 스트레스를 받는지…
아, 달리기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지치도록 달리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돌아와 이렇게 브런치에 글 쓰면서 다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밤새 쌓인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달리기 하면서 도파민과 엔돌핀으로 날려버렸나 봅니다. 아, 어쩌면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다 호르몬의 장난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