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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Sep 25. 2023

단풍국에 가을이 오면…

괜히 단풍국이겠어요.

오늘(9월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2023년의 추분(Fall Equinox)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누가 뭐래도 가을입니다. 온 우주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태양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을의 첫날을 온몸으로 찐하게 만끽하고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 들고 나와서 달리기를 합니다.


북미 대륙의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도시 밴쿠버에서는, 매년 봄마다 갖가지 고운 분홍빛깔로 도시 전체를 수놓는 벚꽃도 꽤 볼만하지만, 사실 신 선생의 취향에는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답습니다.


봄 벚꽃이 아름답지만 변덕스러운 연인이라면 가을 단풍은 오랜 친구 같습니다. 화려한 미모를 뽐내며 갑자기 나타나서 혼을 쏙 빼놓고, 이제 겨우 정신 차려서 마음을 줄만하면 갈 때가 되었다며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봄 벚꽃과는 달리, 서서히 조금씩 빛깔이 변하며 오랜 시간 함께하는 가을 단풍은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짧으면 10월 말, 길면 11월 초순까지 신 선생의 출퇴근 길과 주말 달리기 길에 함께 있어줄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흐리고 간간히 비도 내려서 아쉽게도 파란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달리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익숙한 길, 익숙한 나무들이 좋습니다. 일부는 머리가 빠지고 일부는 진한 초록의 머리색이 빨갛고 노랗게 세고 있는 것이 마치 신 선생의 동년배 중년 아저씨 친구들 같습니다. 사람들 머리카락도 다양한 빛깔로 센다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봅니다. 하하.


이민 1세인 신 선생에게 캐나다라는 나라는, 물론 여러 가지로 고마운 게 참 많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계약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태어난 저희 아이들과 또 그들의 미래의 자녀들에겐 캐나다가 조국이 될 텐데요, 오랜 시간 (1억 년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며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들을 넉넉하게 품어준 ‘아낌없는 나무’인 메이플 나무처럼, 이 나라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저희 아이들에게 든든한 터전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세계의 민폐국이 되지 않고, 지구촌에 도움이 되는 나라로 남아주기를 소망합니다.

Photo by Flying 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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