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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Feb 20. 2023

느그 어무이 뭐 하시노?

신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매년 12월 첫째 주에 전체 학부모 면담이 (parent-teacher conference) 있습니다. 수학이 아무래도 대학에 진학하는데 중요한 과목이다 보니, 웬만하면 비는 시간 거의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5분 간격으로 빽빽하게 면담 신청이 채워지곤 합니다.


면담 전날 밤, 신청한 학부모 명단을 훑어보던 신 선생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이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매년 신 선생이 주관하고 선정하는 ‘올해의 빌런 학생상’ 수상이 매우 유력한 제임스(가명)의 어머니 이름이 보이더군요. 학기 초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모르고 있다가, 지난 10월 땡스기빙 이후에 급부상해 탁월한 말대꾸 신공과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매너 없는 발언으로 인해 신 선생 혈압 상승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녀석입니다. 언제나 나쁜 ‘풀타임 빌런’은 아니지만, 간헐적 싸가지 단식을 하는 파트타임 빌런이라 할까요?

‘아, 올 것이 왔구나…’


보통 아이들은 부모들의 거울인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에 신중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단 줌미팅이 시작되고 영상이 켜지면 첫인사를 하면서 표정과 말투를 살펴 빠른 시간 안에 상대방을 파악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한 쓴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또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수위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얼른 판단을 내려야 하죠. 그리고 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아이가 고쳐야 할 모습에 대해서 기술적으로 잘 전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신 선생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고민이 많습니다. ‘아, 내 자식도 아닌데... 딱 봐서 세게 보이는 인상이면 그냥 좋은 게 좋다고, 공부는 그럭저럭 잘하는 녀석이니 대충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넘길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6개월 이상을 봐야 할 녀석인데 이렇게 대충 넘기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어렵더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저녁 내내 어떤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수십 번을 고쳐서 메모도 해놓고, 출근길에는 걸으면서 혼자 중얼중얼 연습도 했습니다. 10년 전 이 학교 취직하려고 인터뷰했을 때 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듯합니다.


학부모 면담은 8:30 am 첫 인터뷰를 시작으로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엄마와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긴장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약속 시간이 되고 신 선생은 마른침을 삼키며 줌 미팅방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안 들어 오더군요.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할당된 5분이 다 지나도 나타나지 않더군요. ‘나중에 다른 학부모와 면담하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나면 골치 아픈데 아놔 증말!’ 속으로 욕을 하면서 다음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마지막 면담 시간인 오후 5:30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학부모가 약속을 펑크 내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혹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선생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약속 펑크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게 마련인데 그마저도 없더군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이러지 싶어서, 퇴근 후 그 녀석 학생 기록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란이 백지로 비어 있더군요. 캐나다도 이혼이 흔하기 때문에 부모가 같이 안 사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보통 주소는 다르더라도 아버지 신상에 대한 기록은 있게 마련이죠. 혹시 사별을 했나, 아니면 아버지란을 백지로 놔둘 만큼 사이가 안 좋거나 교류가 없나 싶은 생각에 좀 마음이 쓰이더군요. 그리고,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현재 살고 있는 동네와 매우 고단해 보이는 어머니의 직업을 보니 집안 형편이 별로 넉넉할 것 같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 녀석이 수업시간에 몰래 전화기 가지고 놀다가 걸렸을 때, 나온 지 5년도 더 넘은 앞뒤로 유리가 다 깨진 아이폰 8을 가지고 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의외였습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엔 아주 전형적인 유복한 주류 백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한 거 하나 없이 자란 녀석같이 보였는데 말입니다. 신 선생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저와 같은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좀 쓰입니다. (전혀 아닐 수도 있는데 혼자 상상하고 난리 났네요.)


다음날 쉬는 시간, 수업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제임스 이 녀석이 신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헤이 미스터 신, 하우 아 유?’

“굿, 앤 유?” (이 녀석이 왜 왔지?)

“저도 좋아요.”

“왜, 할 말 있니?” (근데 뭐지, 이 녀석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태도는?)

“어제... 우리 엄마, 안 왔죠?”

“응, 안 오셨다.”

“제가 엄마한테 다른 선생님들은 몰라도 미스터 신은 꼭 만나보시라고 했는데... 뭐 여차저차... 그렇게 됐네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근데 왜 나는 꼭 만나보시라고 했니?”

“선생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어요. 선생님한테 저는 뭐랄까 Love-Hate relationship 뭐 그런 거잖아요.”

“음... 솔직히 말하면 요즘 들어 너를 대하기가 많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야.”

“네...”

“너야 뭐 공부는 곧잘 하니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단다. 계속 이대로만 하면 될 거야. 다만...”

“네...”

“질문이건 어떤 요구사항이건, 갑자기 네 마음속에 충동이 일어날 때 심호흡 한번 하고, 지금이 적절한 때인지 한번 살피고 나서 말을 한다면 어떨까 싶어. 내가 한참 강의를 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쑥 끼어들어서 대답을 요구하고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 갑자기 고치기 쉽지 않은 건 아는데... 너무 답답하면 잠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도 괜찮아.”

“네...” (뭐지? 당황스럽네. 말대꾸를 안 하네?)

“그리고 어머니께는 언제건 따로 면담을 요청하시면 만날 수 있다고 전해드려.”

“네, 근데 지난번 ‘신발 사건’ 울 엄마한테 말씀하실 거예요?”

“아니, 그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잘하고.”

“네, 감사합니다.”

“그래, 암튼 먼저 와줘서 고맙다. 앞으로 서로 잘해보자. 넌 똑똑하잖아.”

“네” (스마트하다는 말에 씩 웃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주먹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제임스 이 녀석...

앞으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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