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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Feb 22. 2023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행복한 학생의 조건

Anna Karenina principle.

백과사전 두 권은 합쳐놓은 듯한 크기에 압도되어, 아직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죠.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즉, 행복한 가정들은, (잘되는 집안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이 골고루 다 충족이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다들 비슷비슷해 보이고, 반대로 불행한 가정들은, (그 행복의 조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가정이 불행해질 수 있으니,) 다들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인 듯 합니다.


이에 대해 훗날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그래도 이 책은 읽었습니다. 절반만. 하하!)

“We tend to seek easy, single-factor

explanations of success. For most

important things, though, success actually

requires avoiding many separate possible

causes of failure.”


즉, 우리는 보통 어떤 성공을 위해서 그저 쉽고 단순한 ’성공의 비결‘ 같은 걸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을 먼저 찾아내서 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었을 때 종종 “운이 좋았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단지 겸손해 보이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성공을 잘 돌아보면,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수많은 조건들이 서로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에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법칙을 ‘행복한 학생’이 되는데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행복한 학생이 되기에 필요한 많은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중 몇 가지를 들어보자면, 재능, 성격, 친구관계, 학교환경, 가정환경, 동네환경, 미래에 대한 희망, 부모의 지원 등이 있겠죠. 물론 ‘교사’도 여기서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주변에서 자녀를 행복한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흔히들 먼저 괜찮은 학원이나 과외 선생부터 찾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이 맞다면 “어디 죽은 수포자도 되살리는 기적의 과외선생님 없나요?”라는 쉬운 ‘성공 비결’을 찾기 전에, 관찰과 대화를 통해서 우리 아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실패 요인’들을 먼저 찾아내고, 그것들을 없애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교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한계를 인식하니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교사'는 물론 행복한 학생을 위해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가정환경’이나 ‘친구관계’ 같은 다른 많은 중요한 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니, 제가 아무리 최고로 좋은 교사가 된다 한들, 제가 상대하는 학생의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 학생은 행복할 수가 없을테니, 저로서는 그저 교사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이 행복해진다면 교사로서 작은 기여를 한 것에 보람을 느끼고 같이 기뻐하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교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학생의 다른 중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한 탓일 수 있으니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겠죠.


문제는 교사가 교사답지 못하면, 학생의 다른 조건들이 아무리 좋아도, 멀쩡하던 아이를 망쳐버린 원흉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주변에서 “우리 애가 0학년때, 담임 잘못 만나서 그 후로 학교에 흥미를 잃었잖아!” 하는 식의 이야기들을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겠죠. 과연 저는 지난 16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불행해지는데 기여(?)를 했을까요? 특히 좀 더 참지 못하고 '팩트폭행'하듯 뾰족하게 내뱉은 말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는지 성찰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기억들로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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