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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이 너비 깊이 Mar 16. 2023

'難'中日記 01

'난'중일기-난임 이야기 01: 마음먹기

난소암 종양표지자(CA125) 수치가 안 좋으니 빨리 대학병원에 가 보세요.


2023년 1월 14일 토요일. 지난주에 했던 임신 전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아무 생각 없이 산부인과를 찾은 나를 맞이하는 건 아주 굵고 큰, 붉은 폰트의 '고위험군' 글자가 새겨진 결과지였다.

딱히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던 것이 아니었기에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돌아오는 1월 16일 월요일 대학병원에 예약을 대신 잡아주며 소견서를 써주셨다. 의사 선생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와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우선 머리를 비울 요량으로 생갈치를 사 와서 구워 먹고, 하루종일 콘솔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공포의 시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잠자리에 들었을 때 찾아왔다. 나는 네이버를 켜서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CA125, 난소암종양표지자 수치, CA125 수치 높을 때, ROMA 검사결과지 해석, 난소암…….'

난소암에 결론이 이르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3~4시까지 눈이 벌게지도록 난소암 관련 게시물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난소암인가? 그렇다면 암보험을 미리 가입해 놔서 다행이군. 진짜 난소암인가? 에이 아니겠지?'


월요일 아침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 자체를 처음 가서 허둥지둥 헤맸지만 무사히 진료를 잘 마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소암은 아니었다!

왼쪽 난소에 4cm짜리 혹이 있고, 이 혹은 자궁내막증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은 '자궁내막종'이고 그 때문에 CA125 수치가 높게 나온 것이라고. 월경 때 배출되어야 할 자궁 내막 조직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에 다시 들러붙어 증식하는 질병이다. 어쩐지 생리통이 심하다 했어, 어쩐지 왼쪽 다리가 저리다 했어….


다행히도 주말 동안 여기저기 전화로 물으며 알아보고 수선을 떤 것에 비해서는 소소한 결과였다. 자궁적출후기까지 본 후였어서 더욱 안도했다. 난소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의사 선생님의 희한한 질문이 귀에 꽂혔다.


"혹시 아주 열심히 임신을 시도하실 건가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이지? '열심히' 임신을 시도하는 건 뭘까? 식초물로 샤워하고, 보름달의 기운을 받는 등 민간요법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일까? 새벽에 시도하면 아들 낳는 등등…

도대체 감이 안 잡혀서 되물었다. 열심히 임신을 시도하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임신할 생각이 있으면 수술 없이 바로 시험관 시작하는 게 낫겠어요."


무슨 말인가 하니,

자궁내막증은 월경에 기인한 것으로 월경을 할수록 증상은 더 심해지기 때문에 월경을 멈추는 것이 주된 치료방법인 듯하다. 수술로 내막종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근본 원인인 월경을 계속하는 한 재발률이 높다. 약을 써서 월경을 안 할 수 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임신(+출산과 수유)이고 임신 중에 혹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궁내막증 환자들은 자연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생님의 요지는 임신 계획이 있다면 '시험관 임신'을 바로 시도하는 게 어떻냐는 것이었다.


네? 시험관 임신이요? 제가요? 저 아직 만으로 29살인데.

줄곧 시험관 임신은 40대 부부들이 하는 것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걸 내가 하다니!


AMH(난소 기능 검사) 2.85로 난소 기능도 좋지 못한 상태라 수술보단 시험관이 좋겠다고 하신다. 혹을 제거할 때 필연적으로 난소의 조직들도 같이 떨어져서 난소 기능은 더욱 감소하여 자연 임신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또, 본드처럼 끈적끈적한 성질을 띄는 내막종 때문에 양쪽난소와 자궁자체가 모두 유착되어 있어 이 정도면 나팔관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아무튼 전반적인 기능 자체가 다 저하되어 자연 임신이 많이 힘들단다.


결론 났다. 나는 시험관 임신을 해야 한다. 미래의 아기에겐 미안하지만, 치료의 일환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아서) 물론 사랑의 결실이다. 우리는 2세를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이후 시험관 진행하며 느낀 건데 진짜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시술이다.)


하나의 글로 요약했지만 이 과정에서 병원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느라고 병원비는 약 50만 원가량이 나갔다.

시험관 임신의 시작인 '나팔관 조영술'로 스타트 라인을 끊기로 했다.

너무 무섭고 겁나지만, 나 잘할 수 있겠지?




이 글은 개인의 경험으로 쓴 후기로 생각해 주세요. 실제 의료적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 자세한 건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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