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이 잘리지 않은 이유와 살아남기
승진을 안 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대주주)이 바뀐 회사에서 내가 해고당하지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쇠경(연봉)이 상대적으로 싸게 먹히고 또한 일의 연속성 면에서 남아서 마무리할 한 두 사람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근무하고 싶었던 뉴욕과 취리히 해외사무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경사무소 정리 및 폐쇄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 위로는 아무도 남지 않은 해외영업부서는 국내기관 법인영업팀과 합쳐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위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라고 했던가!
IMF 사태는 1년 도 되지 않아 빠르게 회복되었고, 중간 관리자 이상의 고위직급이 IMF를 기점으로 대부분 해고가 되자 58년 개띠부터 63년 토끼띠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별다른 경쟁 없이 무주공산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고 새롭게 업무를 맡은 이들은 그야말로 직장생활의 대운의 시발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업의 조직개편은 모드변경을 의미한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뀌고 구성원의 절반 가까이가 바뀌자 회사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했고, 해고당한 사람대신 새로 영입되어 들어오는 사람들은 보통은 칼자루를 쥐고 들어오기에 기존의 직원들은 전반적으로 역차별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운 주인의 선택으로 칼자루를 쥐고 들어온 새로운 임직원들은 기존의 조직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롭게 판을 짜고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였고 기존의 직원들은 두려움에 주춤하며 각자 살길을 찾아 나가기 바쁘게 되었다. 저항은 하지만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나 또한 회사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저녁시간쯤 새로 오신 58년 개띠 부장님께서 긴 칼을 옆에 차고 다가오셨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내 어깨를 다독이며 회사의 분위기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직원이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자기와 같이 더 일해 보자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다. 성과급이 나오면 같이 챙겨 주시겠다는 달콤한 말씀은 보너스였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회사로의 면접 준비를 하던 차에 새로운 권력자께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자를 생각이 없다고 하니 살아남은 사람의 안도감이 고민을 해방시켜 주었다.
"네 부장님 저도 밖에서 부장님 명성은 많이 들어왔고 부장님 같은 분 밑에서 새롭게 일을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제안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의 모드변경은 정말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충성의 맹세와 함께 이미 새로운 팀의 일원이 되었고 머슴의 전성시대는 지속 가능하게 될 거 같았다. 역시 난 운이 좋은 것인가!
하지만 점령군으로 온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해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