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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Mar 07. 2024

"나는 하루살이입니다"

제겐 20년 지기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마음이 잘 통해서 이심전심이라는 말과 텔레파씨라는 말이 우리 둘 사이를 정의하는 가장 적당한 단어일성 싶습니다.


이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하루살이야.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싶어"


좀 나무랐습니다. 내일이 없으니 희망 없이 잠깐 살다 죽기를 기다리는 미물인데 왜 하루살이처럼 산다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몇 차례 거듭 같은 말을 하길래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다가는 생물인데 사람으로 치면 그 하루가 일생일 텐데 그 하루가 80년인 셈이고 하루살이에게 한 시간은 사람에게 3년 4개월에 맞먹는 시간이니 하루가 얼마나 치열한 시간이겠어. 난 하루하루가 아깝네.


그 친구의 말은 하루살이처럼 사는 게 아니라 하루살이의 심정으로 시간을 아끼며 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팔방미인입니다. 가슴이 호기심 천국이라서 관심이 다방면에 걸쳐 있습니다. 요리, 서예, 사진, 그림 그리기, 목공, 음악, 인문학, 漢학 등 우선 짚어낼 수 있는 것만 그렇습니다. 이 친구가 유일하게 무관심한 게 정치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데 정치판을 들여다보노라면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서 싫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얼마 전 글귀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입니다.




저나 친구나 60대 중반의 삶을 사는데 사실 하루의 삶을 살펴보면 매일매일이 그냥 반복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참신함과 긴장이 없는 패턴입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계절이 바뀌어가는 걸 모르고 있다가 어~ 봄이네  영춘화, 매화, 산수유가 피었네 하던 시절은 저 멀리 지나갔고 이제는 멀뚱하니 앉아서 영춘화 필 때가 됐겠네~하며 꽃을 기다리는 무료한 삶이 이어지기 쉬울 나이입니다.


언젠가 카이스트의 뇌과학자 김대식 박사의 유튜브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 사는 방법은 불로초를 먹는 게 아니라 많은 기억거리를 뇌 속에게 저장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 눈은 움직임이 있는 것만 관심을 둡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뇌는 일상에서의 반복되는 일보다는 변화를 기억하고 저장해 둡니다. 저장된 각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뇌라는 앨범에 저장해 두는데 저장된 장면 즉 기억할만한 장면이 많은 뇌일수록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말을 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 년을 살아도 '허무하다' 칠십 년을 살아도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는 말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축사로 들려준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죽을 것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삶의 큰 결정을 할 때 저를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 죽음은 삶의 최고의 발명품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변화 요인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 Stay foolish!!! 굶주린 듯 어리석은 듯!!! 이걸 못해내면 굶어 죽을 듯이, 이걸 해내려면 미련곰팅이처럼!!! 잡스는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죽음을 친구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사각사각~~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과학문명의 이기들은 전쟁의 부산물인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적보다 먼저 전략을 수립하고 적보다 먼저 무기를 만들어야 살아날 수 있었을 테니 전쟁은 시간다툼이었습니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곰곰이 되뇌어보니, 친구가 보내온 말을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생이 짧으면'이라는 바로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생의 길고 짧음을 판단할 기준은 없습니다. 있다면 평균수명, 기대수명 보다 더 사느냐 덜 사느냐 정도일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오래 사는 것,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백 년을 넘게 살아도 오래도록 잘 살았다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길게 살아도 인생일장춘몽이라 말할 것입니다. 식재료가 있으나 요리법을 모르면 오이를 씹거나 매운 대파를, 피냄새나는 고기를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의 맛은 요리에 달, 삶의 맛은 사는 방법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봄에는 볼 게 많고, 여름에는 열 게 많고, 가을에는 갈 데가 많고,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계절에 맞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게 최선입니다. 제 친구의 말이 해를거듭할수록 점점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나는 하루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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