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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l 10. 2024

'처음'의 정체

첫사랑은 왜 아름다울까?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그것이 첫사랑입니다. 그 후에 겪는 사랑은 첫사랑만큼 무의식적인 것은 아닙니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브뤼에르의 말입니다. 서툴고 미숙한 시기에 처음 맺는 이성 관계이기 때문에 간절히 원하지만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은 크게 느껴지고 상실감이 큽니다. 큰 만큼 미화되고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평생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첫사랑의 황홀과 첫사랑과의 이별의 아픔은 처음이어서 강렬합니다. 


결혼은 판단력이 없어서, 이혼은 인내력이 없어서 하게 되고, 재혼은 기억력이 부족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인상에서부터 시작되는 실수입니다. 사람은 0.3초 만에 호감, 비호감으로 다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해서 3초 정도만에 그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첫사랑처럼 첫인상도 처음 받은 느낌이어서 짧은 시간에 인지되지만 꼬리가 아주 깁니다.  '생긴 대로 논다'가 '어~~ 생긴 거와 다르네'보다 더 우세합니다. 폴란드 태생의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ch)는 이 '첫인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목록을 사용했습니다.


    Mr.A : 똑똑하고, 근면하며, 충동적이고, 비판적이고, 고집이 세며, 질투심이 강함  
    Mr.B :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비판적이고, 충동적이고, 근면하며, 똑똑함


비교해 보면 두 항목은 똑같은 내용을 역순으로 바꾼 것뿐인데, 실제로 이 두 항목을 따로 떼어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준 뒤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해 점수를 매기게 한 결과 B보다 A 쪽의 평균 점수가 훨씬 높았습니다. 가장 앞의 두 항목, 그중에서도 맨 처음 항목의 내용이 대상을 평가하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Mr.A가 고집 세고, 질투심이 강한 남자라는 진면목을 아는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첫인상은 꼬리가 길기 때문입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겪는 것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릅니다. 첫 아이 출산이 그러하듯이 처음 해보는 것에는 반드시 '산고(産苦)'가 따릅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부스, 처음으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항해를 했습니다. 목숨을 건 만큼 처음으로 이룬 자가 위대한 자입니다. 적이 매설한 지뢰밭에 들어간 부대는 일렬로 서서 전진해야 하고 맨 앞에 선 자는 단검으로 땅을 쑤시며 지뢰를 찾습니다. 뒤에 선 자들은 앞에 선 사람이 밟은 곳만 따라 밟으면 지뢰를 밟을 위험은 없습니다. 같은 지역을 통과했지만 선두에 선 자와 뒤를 따른 자에게 주어지는 지분이 다른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1등과 '최초'에게만 관심 집중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스타가 되지만 0.1초 차이의 은메달 동메달은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신새벽 정화수를 길어서 신령께 바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처음 시간인 새벽 우물물이 가장 정갈하기 때문입니다. 낮동안 두레박이 생활용수를 길어 올리느라 우물에 흙탕물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아 가장 깨끗한 시간은 동트기 전입니다. 해가 뜨면 다시 두레박이 첨벙거릴 테니까요. 물론 화학적인 맑음보다는 신앙적인 맑음과 정갈함을 더 강하게 함축하고 있겠습니다만 하루의 처음 시간이기 새벽이니까 그때 길어 올린 물이 가장 맑고 깨끗합니다.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자상속원칙은 왕가는 물론이고 일반 사가의 상속 혼란을 막기 위한 전통적인 장치였습니다. 장자가 왕위를 안정적으로 계승할만한 나이에 더 가깝고, 다른 형제들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더 높았습니다. 원칙이 그러하니 둘째 셋째는 마음으로는 원하나 단념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단념이 국가와 조직에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나이 많은 자식들을 제쳐두고 어린 자식을 왕위에 앉혔을 경우 찬탈당할 위험이 커집니다. 조선 왕조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세자가 된 이복동생 이방석을 죽여버렸습니다. 수양대군은 장자의 지위로 왕위를 계승한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장자상속원칙이 깨어져서 생긴 비극입니다.


상명하복을 조직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검찰 조직에서는 아래 기수의 후배가 선배들을 넘어 승진을 하는 경우에는 조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승진자의 선배와 동기들이 일시에 조직을 떠나는 관례가 있습니다. 장자상속의 원칙의 맥락은 아니지만 조직의 혼란을 막고자 하는 것은 같습니다.



원래의 명칭인 'slide fastener'가 우리들에게는 '지퍼'로 불립니다. 1923년 미국의 굿리치(Goodrich) 사가 출시한 Zipper라는 상표를 가진 신발이 대히트를 치면서부터입니다. 처음으로 신발에 부착한 물건이 신발을 유명상품으로 만들었고 그 물건이 신발 상표명을 빼앗아버린 것입니다. 일본의 한 회사가 출시한 지퍼의 상표였던 'チャック(자쿠)'에서 유래하여 우리는 지퍼를 '자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프랑스 기업 Poclain社는 건설 중장비 제조사입니다. 포클레인 사는 세계 최초로 굴착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여러 국가 여러 회사에서 자사의 브랜드명을 붙여 굴착기를 만들어냈지만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회사의 굴착기를 우리는 '포클레인'이라는 이름으로 보통명사화 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승합차 '봉고(Bongo)' 역시 포클레인과 같은 '이름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봉고 이후에 출시되는 모든 승합차의 이름을 무시하고 우리는 모두 봉고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식품 조미료 '아지노모도'를 우리 상표로 만들어 처음 출시한 '미원(味元)'은 제조회사를 불문하고 그 뒤에 출시되는 모든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삼성에서 맛의 바람을 일으킬 '미풍(味風)'을 출시하여 미원의 시장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국민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된 미원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마케팅의 거장 Al Ries와 Jack Trout는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다. 인식의 싸움이다.”라고 했습니다. 최초 상기 브랜드(Top of mind brand)가 되어 경쟁브랜드 보다 소비자 마음속에 먼저 인식되어야 구매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박카스'를 마셔야 피로가 쫘악~ 풀릴 것 같고, '딤채'에서 꺼낸 김치라야 유산균이 펄펄 살아있을 것 같습니다. 섬유유연제는 '피존', 정수기는 '웅진코웨이' 등이 그러합니다. '전설의 고향'으로 가자는 할머니 승객의 말을 듣고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는 할아버지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원조 납량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힘입니다.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1903~1989)는 1937년 인공부화시킨 기러기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자신을 엄마로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오리·거위·까마귀 등도 기러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류들이 태어나서 얼마동안 접한 물체를 엄마로 인식하는 현상을 ‘각인(imprinting)’으로 명명했습니다. 사실 그 보다 훨씬  더 이전에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그의 동화 <미운 아기오리>에서 아기 백조는 부화하여 처음 만난 오리를 자신의 엄마로 알고 오리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알고 살지만 정작 오리들은 자기들의 모양과 깃털이 다른 백조를 구박하였습니다. 안데르센이 로렌츠보다 '각인'에 대해 먼저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가 인식의 싸움'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각인효과를 백분 활용하는 자들입니다. 국가 발전을 위한 좋은 정책으로 국민들의 인식을 '구매'하는 퀄리티 높은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거짓 소문을 만들어 상대 당과 라이벌 정치인을 흠집 내려고 하는 저질 정치인도 많습니다. 일단 거짓 유포와 선동으로 상대에게 상처부터 내고 봅니다. 무고 혐의로 고발을 당하지만 표적이 된 정치인은 조사 결과 무혐의로 명예회복은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각인된 그의 부정적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버리지 못합니다. 상처는 나아도 상처의 흔적은 남는 법입니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표적 삼은 대상이 국민들에게 나쁜 정치인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후진적 민주주의의 못된 행태입니다. 경쟁을 통해 상생발전하고 아울러 사회와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고 음모와 권모술수로 '상대를 죽여서' 자신이 살아남고자 하는 옳지 않고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좁은 길로 들어서려는 정치인은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여의도 국회에는 거짓소문 제조기술자가 많아서 걱정이 큽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끝까지 잘못되는 것이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하니 처음이 중요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교육기관인 '가정 학교'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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