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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Sep 20. 2024

오른손 vs. 옳은 손

1. 오른쪽은 옳은 쪽인가?


영어로 오른쪽을 뜻하는 'right'은 옳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왼쪽을 뜻하는 'left'는 left-hand(불길한, 흉조)와 sinistrous(왼쪽의, 불길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좋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어에서도 오른쪽을 뜻하는 'droit'는 올바르다는 뜻도 가지고 있고, 왼쪽을 뜻하는 'gauche'는 '비틀어진, 뒤틀린'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듣기 어렵습니다만 아직도 시골에 가면 노인분들께서는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말 고어에서 그르다는 뜻을 가진 '외다'는 왼쪽의 '왼'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것은 오른손잡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소위 '오른손 우월주의'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체 인류의 90퍼센트가 오른손잡이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모태 오른손은 '용불용설'에 힘입어 더욱 날개를 달아 인류의 구십 퍼센트는 오른손, 오른팔의  운동감각이 왼쪽보다 더 뛰어나게 되고  근력도 훨씬 더 강해집니다.



2. 오른손 아버지


<오른손 법칙>은 물리학에서  자기장 속에서 도선을 움직일 때 도선 내에 생기는 전류의 방향을 나타내는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적용되는 <오른손 법칙>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의 몸을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 비유한다면 오른손, 오른팔의 역할을 감당해야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남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기피하거나, 일을 하다가 힘이 든다고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맡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른손이 그 일을 해냈기에 왼손은 편할 수 있었고 오른손 덕분에 왼손은 여전히 손의 지위를 갖습니다. 가족에게는 그 오른손이 아버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족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아버지는 비빌 언덕으로 자리를 지켰고 비비댈만한 능력이 사라진 아버지는 포근한 고향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삼성생명>의 광고가 생각납니다.  이 시대 아버지 상을 잘 표현한 글이라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오른팔의 역할은 왼팔이 할 수 없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의 아버지는 가족의 오른팔이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있는 사람의 과  감당해 줄 사람이 자신 밖에 없어서 스스로 해야 하는 삶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의지할 이 없이 산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고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와 같이 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홀어머니로서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초인적인 힘을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29살..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37살...자식이 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그 액자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44살...약수터에서 이웃 사람들이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48살...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같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54살...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내의가 있는데 사 왔다고 했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61살...딸이 시집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보고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이제는 희끗희끗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3. 아들아, 딸아 너는 '왼손' 하거라


딸을 시집보내면서 친정어머니는 눈물 어린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몸 상할라. 힘든 일은 피해라. 피하면 누가 해도 할 일이다. 일부러 나서지 말아라. 몸 상하면 너만 서럽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속에는 무서운 음모가 서려 있습니다. "네 시집 식구들은 너와 한편이 아니다. 남편은 그야말로 '남의 편'이니..." 이 말대로 시집살이를 한 딸은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기 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 '출가외인'이라는 말로 매섭게 내몬 딸은 고추당초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하면서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정어머니의 마음은 애지중지 기른 자식이 시집을 가서 '독박'쓰는 일이 있을까 봐 당부하는 말이겠습니다만  의연한 며느리가 당당한 아내, 떳떳한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직장의 오른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는 속담의 현대판은 '웬수는 직장에서 만난다'입니다. 직장은 업무를 매개로 관계가 맺어지는 곳이므로 업무연관성이 깊은 사람일수록 사이가 안 좋아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힘든 일은 피하고 쉽고 빛이 나는 일을 맡으려는 경쟁으로 '웬수'가 되기 십상입니다. 가정보다도 '오른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른손은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이나 친구들 사이의 오른손이 헌신적인 오른손이라면 직장에서의 오른손은 헌신이라기보다는 승진이나 상여금 등의 반대급부를 목적으로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탈리아의 사회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자신의 정원에서 키우던 콩 중에서 잘 여문 소수의 콩깍지가 전체 콩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관찰을 하였습니다. 파레토는 이 사실을 거시경제학에 응용하여 이탈리아 인구 20%가 전체 국토의 80%를 소유하는 현상에 대해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세인들은 이 현상을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화점 매출의 80%가 전체고객 20%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소설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에 대한 흥미로운 다음과 글을 남겼습니다.

만약 개미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노동에 종사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사실 천제 구성원 가운데 3분의 1은 잠을 자거나 한가로이 돌아다니면서 빈둥거린다. 또 다른 3분의 1은 쓸데없는 일을 벌이거나 심지어는 다른 개미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을 저지른다. 예를 들면 지하통로를 뚫는답시고 일을 벌이다가 일껏 만들어 놓은 다른 통로를 무너뜨리는 식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앞서 말한 사고뭉치들의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도시를 제대로 건설하고 관리해 나간다. 이들이 있기에 도시 전체가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中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개미 무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20% 정도를 모아서 한 무리를 만들어 놓으면 그 가운데에서 또 소수는 열심히 일하는 '오른손'이 되고 나머지는 '왼손'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5. 자동차 헤드라이트 전구


요즘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전구로 LED전구를 사용하므로 폐차할 때까지 전구를 교체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헤드라이트 전구를 자주 교체하곤 했습니다. 양쪽의 전구가 동시에 고장 나는 일은 드물고 한쪽이 먼저 고장이 납니다. 직접 내려서 확인하거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한쪽이 고장 났다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비소에 가서 전구를 교체할 때 정비사는 늘 고장 나지 않은 쪽을 포함해서 두쪽 모두를 교체할 것을 권합니다. 고장 난 한쪽 때문에 멀쩡한 다른 한쪽도 곧 고장 난 다는 게 이유입니다. 장사 속인가 싶다가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른손 의존도가 높으면 오른손은 먼저 고장이 납니다. 야구투수의 팔처럼 말입니다. 아버지에게, 장남에게, 자의든 타의든 일 중독자들에게 과도한 노동은 조직을 병들게 합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은 생물학적인 존재방식입니다. 인간이라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타동물과 구분하려고만 들지 말고 만물의 영장답게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공존공영(共存共榮)을 모색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오른손'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오른손이 늘 '옳은 손'일지는 생각해볼 입니다.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어느 '오른손'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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