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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30.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나비랑  찢어진 지붕을 고치다 104

나비랑 찢어진 지붕을 고치다



            

바람은 끊임없이 지붕을 훑고 지나갔다. 집 창고 문이 열렸다 닫혔다 삐그덕거렸다. 신경이 쓰였다. 하기야 집 꼬라지가 여기서 더 나빠 봤자 어쩌겠어. 나는 쓰레기 문제로 성길씨에게 상한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내 집도 아닌데 지붕이 날아가든 말든지 성길씨가 알아서 하겠지. ‘만약에 지붕이 날아가먼 생고생은 내가 헐 텐디, 그러먼 텐트 치지 머. 봄인디 설마 얼어 죽겄어!’ 성길씨는 혼자 뭐를 하는지 밖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옴짝 딸싹 하지 않았다.   

  

“지붕 괜찮냐?”

“아직 안 날어갔어”

“꽉 잡고 있어라”

“까불이랑 지붕에 올라가 엉덩이로 누르고 안저 있을라고”

“주인은 뭐 한대?”

“몰라! 지붕 천막 날아가먼 구호물자 보내든지 성금이나 보내라.”

지붕이 슬레이트나 기와 대신 천막으로 덮여 있다. 집 꼴을 아는 중계동에 사는 친구가 걱정스러운 나머지 전화를 했다.
 

나는 해 떨어질 때까지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갔다. 원래는 밤에 마당에 나가서 고양이들하고 놀고 별도 보고 처마 밑에서 서 있다 들어온다. 오늘은 미동도 안 했다.

밤새 지붕에서 바람 찢어지는 소리, 천 뜯기는 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고양이 영역 다투는 소리가 처마 아래 풍경 소리와 뒤범벅이 된 채 방안까지 흘러들어왔다. 귀곡산장이 따로 없었다. 한숨도 못 자고 새벽에 잠깐 잠이 들랑 말랑하고 있었다.     


“나아비, 나아비야.”

성길씨가 고양이를 불렀다. 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방안까지 파고 들었다. 나는 시계를 쳐다봤다.

‘지금 8시 10분이먼 그럼 6시 10분쯤 인디 저 양반은 뭔 일로 일찍부터 돌아다닐까?’

탁상용 전자시계를 맞출 줄 몰라 시계는 일 년 넘게 두 시간을 먼저 간다.

이불 밖으로 나와 마루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밭에 성길 씨가 보였다. 자기 텃밭에서 엄청나게 크고 알록달록한 천막을 펼쳐놓고 있었다.

내가 상추 씨앗 뿌리고 난 후 천막으로 밭을 덮었을 때 햇빛을 못 받아 죽을 수 있다고 걷으라 했었던 그 천막이다. ‘그땐 그래놓고 웬일이래’ 그는 가위로 천막 가장자리를 자르고 있었다. 일단 궁금해 마당으로 나갔다. 신문을 집으면서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뭐 심을 건디요?”

“......”

“아저씨, 뭐 심을 건디요?”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

‘저 양반이 꿀을 드셨나?’

“어젯밤 지붕이 떨어져 나갔어요.”

가까이 가서 말을 붙이려고 걸음을 뗐더니 성길 씨가 얼른 말을 받았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밤새 찢어져 나간 지붕을 천막으로 짜깁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별일 아닌 척 집으로 들어왔다. 성길씨 입장에서는 나 보기가 창피하고 민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일어나기 전에 후다닥 해치우고 싶었던 것 같다. 지붕도 없이 천막을 덮어 놓은 집을 세라고 내놓고 매달 돈을 받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이제는 맘 놓고 지붕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점심때가 되자 성길씨가 집으로 들어갔다. 궁금해 얼른 밖으로 나갔다. 집 입구에서 깨금발을 딛고 지붕을 쳐다봤다. 원래대로였다. 반대쪽으로 가서 쳐다보았다. ‘옴매 저게 머여!’ 떨어져 나간 천막 위에 알록달록한 천막을 쳐놓고 돌로 눌러 놓았다. 햇빛에 녹은 천막은 스티로폼으로 얼기설기 덮여있었다. 흥부네 집도 아니고 참말로. 그동안 집 뒤로 돌아가서 지붕을 쳐다볼 일이 없었다. 오늘 같은 기분이면 차라리 달팽이 집이 부럽다. 저 찢어진 천막 지붕 아래서 살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그동안 가난에 취해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동가식서가숙을 지나 유리걸식을 해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막상 지붕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저 모습을 보기 전에는 지붕이 초라하다고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었다. 성길씨가 돈 들여 고친다고 해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었다. 나는 그런 집을 집이라고 세놓은 성길 씨를 오히려 위로했다.

“우리 친구들이 집이 특이하게 생겨서 자주 놀러 오는 거예요. 아파트라먼 여기 놀러 오겄어요?”

나는 지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속을 모르는 까불이가 야옹거리면서 따라다니다가 배를 까뒤집는다.

성길 씨가 사다리 타고 올라가 천막 칠 때, 어쩌면 나비(까불이)는 주인을 도와 돌, 망치, 못, 가위 따위를 물어 날랐을지 모른다.

저런 지붕 아래서 사는 초라한 내 모습은 벌써 잊고 상상의 나래를 펴다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구는 나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까불아! 니 각시 도도랑 새끼들 데꼬 와라. 멸치와 통조림 줄게. 지붕 고치느라 너도 수고 했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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