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Jul 10.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요구르트 병 속에 왕벚꽃이  116

요구르트 병 속에 왕벚꽃이



                  

날이 흐리면 꽃빛이 더 오묘하다. 풀치 뒷모습도 바람에 날리는 꽃잎도 나를 휩쓸었다. 며칠 전 레코드를 켜고 음악을 듣고 싶은데 레코드가 고장 나 있었다. 오늘 친구가 턴테이블을 고치러 왔다.     


밀차를 밀고 집에 갔던 풀치가 30분이 지났을까. 금세 다시 마당으로 들어섰다. 창밖으로 본 풀치는 ‘옴매 썩은 동태눈처럼 가부렀네’ 풀치는 지푸라기처럼 맥없이 걸었다. ‘풀치야! 아무리 인생이 알코올이라지만 그러다 기척도 없이 휘리릭 저 너머로 간다.’ 풀치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듯 술에 취해 꼬부라진 혀로 중얼거렸다.  

풀치 손에 야쿠르트 병이 들려있었다. ‘저건 또 뭐여?’ 야쿠르트 병 속에 왕벚꽃이 꽂혀있었다. 풀치는 비척거리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려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집안 신발장 앞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꽃을 나에게 건넸다. “아따 참말로 난감허네” 오디오를 고치던 친구가 고개를 내밀자 풀치는 눈이 동그래졌다.

“누님 애인이에요?”

“응!”

참말로 묘한 상황이었다. 내가 애인이라고 재빨리 대답한 것은, 술에 취해 아무 때나 평상에서 눕거나 노래하지 말고 앞으로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친구는 요새 영화, 티브이 속을 종횡무진하는 시인 남자친구였다. 애인이라는 말을 들은 풀치는 발을 뒤로 뺐다. 웃음기가 싹 가셨다. 곧바로 뒷걸음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째서 ‘나하고 저하고 뭔 사이도 아닌디 이리도 속이 갑갑헐까’ 벚꽃도 나도 모를 일이다. 풀치가 좋아한 담배가 뭐드라. 뭔 플러스라 했는디.’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치의 푹 꺼진 눈이 떠올랐다. 그와 벚꽃 아래서 막걸리나 한잔할까 하다가 얼른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 오지랖아 정신 차려라!’     


시인 친구를 배웅하고 마당에 서 있었다. 풀치는 마당 쪽을 보지도 않고 밀차를 끌고 샛길로 내려갔다. 비틀거리는 길에 벚꽃이 눈처럼 내렸다. 풀치가 가는 그 길을 나도 뒤따라 그냥 걸었다.   

  

며칠이 지났다. 식탁 위 야쿠르트 병에 벚꽃이 시들어가고 있다. 바른말 잘하는 친구가 놀러 와 벚꽃을 보고 말했다.

“말라비틀어진 꽃 갔다 버려라. 너는 뭘 버릴 줄을 모르냐!”

“풀치가 준 거야.”

“너, 풀치 좋아하지?”

“옴매 그것이 아니고 연민, 연민 너 모르냐?”

“연민 그것이 밥을 주던 술을 주던 너 이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근디 연민이 없으먼 그것은 지푸라기이지. 지푸라기로는 밴댕이 못 구어야.”

“아이고 술주정뱅이한테 풀치라고 별명 지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술도 시들고, 너도나도 시들고, 다 시든 것이 문제지. 꽃 시들먼 갖다 버릴 거여.”

“어이구, 말이나 못 해야지!”

나를 한심한 듯 쳐다보던 친구는 야쿠르트 병을 식탁 끝으로 옮겨놨다. 이리 비키고 저리 밀리는 야쿠르트 병이 꼭 풀치 같았다.


친구가 집으로 가고 난 뒤 야쿠르트 병을 식탁 가운데로 옮겨놨다.


나는 풀치와 같은 담배를 태우는 성길씨한테 담배 이름을 물어보려다 그만뒀다. 혹시 자기 사 주려나 성길씨가 오해할까 싶어서다. 아니면 ‘저것들이 뭔 사이일까?’ 궁금해할지 몰라서다. 오늘은 이래저래 풀치가 우울한 날이다.

'사랑지옥에서 온 개',라고  누가 말했던가. '멍멍' 고골마당은 오늘도 복잡하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