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Oct 15. 2024

불령품들의 사계

미용실 앞면과 뒷면은 서로 닮아간다 142

미용실 앞면과 뒷면은 서로 닮아간다




너는 눈썹을 다듬으러 미용실로 가고

나는 죽기 싫어 산으로 간다

네 거울 속에서 미용실 안쪽이 부풀어 오르면

나는 눈을 감은 채 산길을 걷는다

어나 서로의 눈 밑을 떠돌다가 가는 우리,

너와 내가 남긴 흔적 따위 아무 소용도 없는데

계곡 물소리 자갈을 치고 돌아간다


빠짐없이 핀 부추 꽃 사이를 나비들이

쉴 새 없이 옮겨다는 오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찾아오는 이도 없다

길이 흐트러지더니 구름이

귀룽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눈썹 끝을 곧추 세운 그녀는

밤길을 숨 가쁘게 달려 거울 속으로 간다

나무보다 조용히 앉아있는 새들은

나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면도칼 하나 입 속에 감추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나는 물속의 뒷면을 뒤지다

서로 남모르게 살아온 걸음을 떼어 놓는다


젖은 날개 위에 또박또박 다 적을 수 없는 날들

말썽 없이 나무 곁을 지나가는 바람도 헛것은 아닐 텐데

상갓집 마당에서 화투패를 죄던 눈빛이 벌겋게 건너온다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는 우리

지금 어디선가 막 태어나기 위해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