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Oct 1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짜장면이 불자 해가 졌다 143

짜장 불 해가 졌다



산에 있는데 휴대폰에 ‘고골 전원주택’이 떴다. 집주인 성길씨다. 성길씨 이름 대신 고골 전원주택으로 저장해 놓았다.

 “에엘치이에서 우우펴편무울이이 와왔느으은데 우우리 지이입이 수우용에에서 빠아져었대에요. 어어디세에요? 빠알리 와아봐아요”

수화기 너머 성길씨는 흥분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용에서 빠졌다는 말을 들으면 친구들에 전화하고 좋아했었다. 성길씨는 우리 집이 하남 교산 3기 신도시에 수용됐다고 했다가 안 됐다고 했다가 수십 번 말을 바꿨다. 내가 얼마나 성길씨 말에 흥분했다가 또 찌그러졌었는지. 우리 집이 수용에 빠졌다고 할 때마다 풀치랑 성길씨랑 평상서 짜장 짬뽕 파티를 몇 번을 했던가. 나 혼자 막걸리를 또 얼마나 마셨던가. 이제는 성길씨 근거 없는 말에 더는 기뻐 날뛰고 싶지 않았다.

      

엊그제 아침에 밭 한 바퀴 돌다가 뚜껑이 열렸다. 막사 뒤쪽 놀고 있는 땅에 올봄에 대파, 들깨 씨를 뿌리고 흙으로 조심스럽게 덮었다.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자랄 거여’ 들깨, 대파는 가뭄에도 땅을 뚫고 싹을 내민다는 것을 나는 안다. 거의 이십일 지나고 4월 초에 드디어 눈곱 만한 부호들이 나에게 응답을 했다. 나는 씨앗들이 도달한 최초의 높이를 맛보았다.

며칠 전 대파를 다 뽑아 먹은 자리에 고수 씨앗을 3천 원을 주고 사 왔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골을 가지런히 냈다. 고수 씨를 뿌리고 호미로 흙을 끌어다 덮고 있었다. 성길씨가 수돗가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났다.

“뭣 심어요? 좀 있다 갈아엎을 건데.”

‘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엎는다고 지랄 난리까. 까불아, 니 아빠 사추기냐?’ 지나가는 까불이에게 화풀이를 했다. 가던 정이 다시 와버렸다.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성길씨는 연탄창고에서 쇠스랑을 들고 나오더니 진짜 밭을 갈아엎었다. 아! 입에서 저절로 쌍욕이 나왔다. 차마 글로는 못 옮기겠다. 어디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어 상계동 친구 영아한테 말했다. 옴매, 친구는 나보다 더 센 욕을 했다. 킥킥 둘이 웃고 말았다.

     

그 일이 생각나 당분간 말을 안 하려고 맘먹은 터라 시큰둥 대답했다. “산에서 오후 늦게 내려가요” 평소보다 열 배 늦게 걸었다. 집으로 가기 전 밭둑에 주저앉아 호두를 줍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서 어정거리던 성길씨가 나를 보았다. “여기요”성길 씨는 동네방네 다 들리게 나를 불렀다. 나는 옆 눈으로 쳐다보고 못 들은 척했다. 그는 더 크게 “여기요, 저기요” 지랄 옆차기를 했다. 나는 “왜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 집사람한테 빨리 와서 밥 차리라고 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집으로 걸어왔다. 성길씨 안 보이게 막대기 지팡이와 배낭을 평상에 패대기치고 성길 씨 마당으로 갔다. 배낭에 화풀이한 것은 세 든 사람의 처지가 아니라 나의 소심한 성격이다.


수돗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불어 터진 짜장면이 반쯤 남아있었다. 단무지가 들어있는 일회용 그릇은 비닐을 뜯지도 않았다. 아직 서 있는 소주병은 막잔이 남아있었다.

“여여집, 이이잖아아요, 서어류우가 나알라 와아왔어요오?” 그는 내 호칭 정리를 못 해 그때그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른다.

“어디서 뭐가 날아왔다고요?”

“ 우우리리 지입이 빠아져었다고오요. 서어류에 지익이 아안 찌익혀었으니 가아짜아죠?”

“아저씨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겄어요,”

나는 서서 말했다.

성길씨는 우리 집이 서류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짚어가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눈을 비비고 들여다봐도 우리 집이 수용에서 빠졌다고 기재 돼 있지 않았다.

성길씨는 서 있는 나에게 의자를 내주면 앉으라고 했다. 앉으면 한 시간 이상은 성길씨 설명을 들어야 한다. 나는 끝까지 서 있었다.

“지입 어얼세에 오올려어야 되에겠어어요.” 뜬금없이 성길씨가 말했다.

요즈음 그는 세 올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사장님 자꾸 이런 말 허시면 저 이사 가버릴 겁니다.”

“가아시드은가아.”

“저도 첨 말하는디 이사 올 때 집 고친 것이 6백만 원 정도 들어갔어요. 그럼 월세 몇 달 치는 안 받아야 헌다고 윗집 김 사장님도 성길씨한테 직접 말을 하더구만. 그때도 생 까고, 이 어려운 환경에 월세를 깎아주지는 못 헐망정 세를 올린다고요? LH에서 이놈의 집구석을 허무네마네 하는 판국에 너무 허네요.” 나는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폭포처럼 그의 얼굴에 쏟아부었다. 며칠 전 밭 갈아엎은 것까지 합해 크게 대들었다.

요새 끄떡하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는데 그가 법을 모르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계약 갱신 청구권 서류를 내면 나는 앞으로 이 년을 지금 내는 월세로 더 살 수 있다고 부동산 하는 친구가 가르쳐 줬다. 내가 버티고 있으면 성길 씨가 곤란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를 내보내야 지장물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나는 흥분이 가라앉자 성길씨 입가에 짜장이 잔뜩 묻어있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환장 허겠다.’ 이런 사람하고 내가 뭔 말을 하겠다고. 나는 의자에 앉아 그에게 막잔을 따라주었다. 나는 그의 넋두리를 한 시간은 받아주었다. 나는 성길씨에게 졌다. 산 뒤로 해도 졌다.                                             

작가의 이전글 불령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