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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Dec 07.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방아쇠 증후군 155

방아쇠 증후군



                   

병원에 갔더니 방아쇠 증후군이란다. 처음들어봤다. 왼쪽 엄지손가락이 굽어지면 펴지지를 않았다. 책상 모서리에 스치면 자지러졌다. 알바하다 손가락에 힘을 줘 이렇게 됐다. 힘을 빼야 하는데 요령이 없었다.  

   

처음으로 총 한번 쏘지 못하고 병원신세를 졌다.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으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 길을 따라 수술 안 하려고 병원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 돈도 만만치 않아 물리치료를 이 삼일 건너 다녔다.

끄떡하면 깁스했다. 그래서 수술하게 되면 머리 감을 때, 걸레 빨 때, 옷 갈아입을 때, 등이 가려울 때 불편한 게 너무 많아 버텼다. 점점 손가락이 보라색으로 변해 갔다. 무서웠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을 자주 가서 의사 선생님하고 친했다.

“당장 수술해야겠네요.”

“선생님, 오늘 수술할 수 있으까요?”  

“아침에 뭐 먹었어요?”

“블루베리 주스 한 잔요.”

“오후 세 시에 합시다.”

“네.”

빛의 속도로 수술을 결정했다. 7층 입원실 올라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간호사가 방아쇠 증후군 환자 중에 가장 심하다고 했다.  병실로 올라와 환자복 입고 찍은 사진을 친구들 단체톡에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장난쳤다.

“느그들아, 병문안 안 와도 된다.”  

   

간호사가 2시 40분쯤 4층 수술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수술대에 누워도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황반변성 때문에 수술대 자주 올라가서 그런지 두렵지 않았다. 전신 마취도 아니고 왼쪽 어깨에서 손가락까지 부분 마취한다고 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데 의사들 말이 다 들렸다. 의사 한 명이 저녁에 곱창으로 회식하자고 했다. 그중 한 명이 곱창을 못 먹는다고 했다.

“곱창 남은 것에 부추 넣고 볶은밥은 소주 안주로 최곤디.”

나는 곱창 안주에 소주 생각이 나서 말했다. 티브이에서 한우 광고가 나오면 하면 채널을 돌린다. 한우는 안 되고 곱창은 괜찮다? 나의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렇다고 안 먹고살 수는 없고.

“고향이 어디예요?”

마취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신안 지도 읍내예요.”

“나, 거기 가 봤어요. 도 엘도라도 상당히 아름답던데요.”

“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태평 염전도 있고 소금이 달어요.”

나는 신안 소금을 자랑했다.

“네, 마취합니다. 수술하는 엄지손가락 아래가 찌릿하면 아, 하고 신호하세요.”     

귀밑 여기저기를 네 번이나 찔러도 엄지손가락이 찌릿하지 않았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번에는 겨드랑이를 주사로 찔렀다. 겁이 났다. 나중에 마취가 안 풀리면 어떡하지? 불안했다.

“됐다” 마취 의사 말이 들렸다. 춥다고 했더니 이불을 덮어주었다.     

수술실 안이 바빠지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상담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수술은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어지러워 비틀거리며 수술대에 앉아 있는데 남자간호사가 휠체어에 앉혔다.

곧바로 병실로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왼쪽 팔이 감각이 없었다. 천장을 보고 있는데 바람이 창을 거칠게 흔들었다. 어두워졌다. 병실 침대에 혼자 누워있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콧구멍이 시큰거렸다. 콧속을 후벼 팠다. 병원 올 때마다 혼자 잘해 내리라 맘먹었지만, 쓸쓸했다. 친구와 같이 오면 밖에 기다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혼자 다녔다. 옆 침대 가족들이 간호해 주는 것 보니까 부럽기는 했다. 그래도 속 편한 게 낫다. 병문안 온 사람들 서성거려 누워있기 싫었다. 오른쪽 팔꿈치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고일어났다. 슬리퍼를 끌고 복도로 걸어 나갔다. 비가 내렸다. 건너편 아파트 불이 하나 둘 켜졌다. 불빛 아래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 것을 잠시 생각했다. 복도 끝 창문에 빗방울이 달라붙었다. 빗방울은 손가락을 편 것처럼 유리창을 붙잡았지만 미끄러졌다. 빗방울은 마치 손을 놓치고 만 고아 같았다.  

   

“언제쯤 마취 풀려요?”

“네 시간 있으면요. 체질에 따라서 새벽에 풀릴 수도 있어요”

의례적인 답변만 하고 간호사가 병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가려고 오른쪽 어깨를 침대 바닥에 기대고 겨우 일어났다.

네 시간이 지나도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디 왜 이러는 거래요?”

“너무 걱정 말아요.”

“너무 걱정된디요...”  

   

몇 년 전, 손목이 부러져 수술할 때는 수술실에서 나올 때부터 마취가 풀렸었다. 지금은 배 위에 왼손이 있는 줄 알고 보면 침대 위에 있다. 왼손을 잡으려 일어나다 침대 위에서 나뒹굴었다. 다시 왼손을 잡아 배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놓으면 왼손이 침대 위로 뚝 떨어졌다. 배에 계속 왼손을 올려놓아도 덜렁거리며 침대 위를 돌아다녔다. 공포 영화 보면 팔다리가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딱 그 느낌이었다.


눈이 빠지게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7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만약에 마취가 안 풀리면 어쩌까.’

일어나 앉았다. 왼손을 오른손으로 꼭 잡고 말했다.

‘만약에 니가 없으면 기도도 못 허고. 운전도 못 허고. 돈도 못 세고, 불편헌 것이 백 가지도 넘어야. 앞으로 글도 열심히 쓰고, 죄짓지 않고, 엄마 납골당도 자주 갈 것인께’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이 상황에서 옆 침대 아줌마 말이 떠올렸다. 내가 수술하려고 문을 나설 때였다. 아줌마는 퇴원하려고 짐을 챙기다 나에게 말했다.

“어디 수술하세요?”

“손가락요.”

“아, 물레방아 뭐라 하던데 그거구나.”

“...... 아! 예.”

‘방아쇠 증후군’이라 말을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어디서 웃음을 주게 하려고 나는 입을 닫았다. 나이 드신 분이라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 헷갈리는 거 같았다.  

‘물레방아, 아줌마 미안허요. 방아쇠 증후군이라고 말 안 해서. 제집 옆에 하남 문화재 연자방아가 있는디 연자방아라고 하면 어쩌겄어요? 이 방아나 저 방아나.’

불안해서 뒤척거리다가 왼쪽 어깨가 가려워 긁었다. 아! 긁은 느낌이 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6분이었다. 손가락을 만져보니 아팠다.

‘아이고 살았네. 내일 집에 갈 수 있겄네.’

수술 전 친구들이 말하기를 방아쇠 증후군은 수술 시간이 십오 분이라 해서 그런 줄 알았다. 수술 후 그날 퇴원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하루 입원해야 실비보험이 나온다 해서 입원을 한 것이었다. 만약에 입원 안 했으면 어쩔뻔했을까? 마취가 열 시간 삼십 분 만에 풀렸다. 대수술이라도 한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퇴원 준비를 하였다. 양숙 동생한테 점심 먹자고 전화가 왔다. 어젯밤 바람에 지붕 덮은 천막이 날아갔을까, 걱정돼 집에 가야 했다.

맨 날 다치고 깨지고 엎어지는 닮아 허술한 집.

‘순둥아, 점박아, 책상아, 건조대야, 배추야! 기다려 내가 간다. 빵야, 빵야’

약봉지 한 아름 안고 총알같이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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