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 너는 어떻게 생각허냐?” 산이는 머리를 꺄우뚱거리다가 페키니즈 특유의 스타일로 뒷 발을 쭉 뻗고 엎드렸다.
“그래 니가 뭔 말을 허겄냐” 나는 편의점에 가서 '꼬량주' 한 병을 사 왔다. 물을 안주 삼아 한잔 원샷 했다. 왜 술을 마시면 막혔던 것이 뚫릴까. 재만 동생이 생각났다.
재만 동생은 외씨버선길을 조성한 조경가다. 그는 요즘 조경 일을 때려치우고 한옥을 배우러 다닌다. 그는 숲이건 눈밭이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잠자리를 만들어 내는 전천후 인간이다.
재만 동생에게 폐가를 고칠 수 있겠는지 전화로 물어보았다.
일단 둘이 고골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 잔 더 원샷했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그렇지만 어깨는 무거워지고 눈꺼풀은 내려앉았다. 고량주는 나를 자빠트렸다.
다음날 재만 동생은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그는 집을 대충 훑어보고 말했다.
“손보면 괜찮겠는데? ” 재만이는 유전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말했다.
계약서를 쓰기 전에 다시 집안을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은 작은방 옆에 붙어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너무 더러워 차마 글로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이동식 화장실이 깨끗했다.
더는 집을 둘러보고 싶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돈 나가는 소리가 후드득 들렸다.
재만 동생도 “하아” 소리를 냈다. 재만 한숨 소리, 불안한 내 눈빛, 옆에서 내 맘이 바뀔까 봐 얼굴빛이 달라지는 집주인 세 사람 표정의 의미는 각자 달랐다.
집에 와 소파에 엎어져 끙끙 앓았다. 산이는 이런 내게 물이라도 떠다 주고 싶은 심정 같았다.
산이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모! 내가 언제 좋은 집 원했어요? 마당 있고 산책할 수 있고 딱이네!” 산이는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있었다. 저 때문에 쫓겨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닌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 저런 집이 숨어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런저런 집이 맘에 안 드는 이유를 다 접었다.
“하나님 이모랑 산이랑 산밑에서 살게 도와주세요.” 이곳에 이사 오고 싶어서 아침마다 산이 손을 맞잡고 5년 동안이나 기도를 했지 않은가.
그래 남한산성 밑에서 한 번 살아보자 “산아 가즈아, 고 고 고골로! ” 산이는 가자는 말에 벌떡 일어나 꼬리를 모터처럼 흔들며 뱅글뱅글 돌았다. 12월 말일에 계약서를 썼다.
이월 한 달 동안 공사에 들어갔다. 재만 동생 한숨은 콧노래로 바뀌었다. 난장에 텐트 치는 것만큼이나 그는 폐가 고치는 일을 즐거워했다.
집주인아저씨는 월세 살면서 뭐 저렇게까지 일을 벌이나... 하면서도 기분 좋은지 자주 들여다보러 왔다. 수리비용을 주인더러 내달라고 하지도 않고 집을 고치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도 좋은 티는 안 내고 태클도 걸지 않았다.
집 고치는데 돈이 제일 많이 든 것은 화장실이었다. 깨진 변기와 타일 벽과 바닥은 들뜨고 곰팡이 때문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비용을 절약하고자 방법을 생각했지만 뜯어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변기에 엉덩이조차 붙일 수가 없었다. “나오던 똥도 놀라 들어가게 생겼다”며 재만이가 허허 웃었다.
화장실 타일 벽을 보니 타일 전문가 사촌오빠가 생각났다. 사촌 병무 오빠는 연예인들 집 공사를 많이 했다. 일당이 세서 말하기 엄두가 안 났지만, 내가 부탁하면 그냥 해 달라는 것인데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전화해 화장실 고쳐 달라는 것은 양심에 털 나지 않고서야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파헤쳤다. 바닥에 자갈을 깔까. 물에 강한 벽지를 사다 붙일까. 하버드대 갈 것처럼 머리를 싸매고 오만 방법을 생각했지만 쳐져 있는 천장은 어쩔 것이여.......
정말 눈 딱 감고 병무오빠한테 뻔뻔하게 연락했다. 오빠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즉시 왔다.
“ 나 참 살다 살다 이런 화장실은 첨 봤다” 다음날 오빠는 새벽부터 화장실 타일을 전부 뜯어내고 벽을 판판하게 바로 잡았다.
나는 오빠 따라 하남 근처 타일 도매상가로 가서 타일을 골랐다. 자잘한 것은 오빠가 쓰다 남은 것을 갖고 와 붙였다.
날씨는 봄날 같았다. 오후가 되자 햇빛이 방안 깊숙이 비추었다. 타일을 잘라내고 붙인 작업을 주방까지 했다. 꼬박 삼일 걸렸다.
주인아저씨는 “저러다 내 집 아작 내는 거 아니야?” 걱정된 눈빛으로 집 주변만 돌다 돌아갔다. 그래도 궁금했는지 이웃 주민을 데리고 와 같이 구경했다.
다음 날 병무 오빠가 “환장 하겄네!” 누군가 타일을 밟아 줄눈이 비틀어졌다고 했다. 집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인뿐이다.
화장실이 궁금했던 주인은 밤에 혼자 몰래 들어갔던 것이다. 호텔 화장실처럼 변한 화장실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틀어진 타일 줄눈은 주인과 나의 앞날의 암시였다)
“아따” 이것 달래 놓으면 저것이 울고 이젠 벽이 칭얼거렸다. 벽에다 무슨 색의 옷을 입힐까.
나는 카키나 블루 브라운을 좋아하지만, 집 꼬라지가 어두우니 밝은 색을 칠하기로 맘먹었다.
페인트칠은 군산에 페인트 전문가와 친구들이 힘을 보탰다. 노란색은 벽에, 연두색과 보라색은 테두리에 칠했다. 내 시 ‘봄을 올라타다’를 벽에 썼다. 노재순 화가께서 벽에 그림도 그려주셨다. 나와 산이와 아버지가 복사꽃 아래를 지나 읍내 장에 가는 풍경이었다.
재만 동생은 구석구석 선반을 달고 식탁과 평상을 만들었다. 전등도 달고, 장판 깔고, 싱크대와 에어컨 설치하고, 도배하고 (도배는 주인이 해준다며 가져온 벽지가 촌스러워 방산시장 가서 내 돈 주고 사 가지고 왔다)
구석구석 집안을 홀딱 벗겨내고 새 단장을 했다. 이 모든 것을 지인들이 다 도와줬다.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 그들 이름을 집 벽에 써 놨다.
이렇게 집을 고친 것은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서 오래 살고 싶었다. 쫓기듯 왔지만 여기 정 붙이고 싶었다. 이런 참한 내 생각에 찬물을 확 끼얹은 대박 사건이 얼마 안 가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