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추위 /집주인 성길씨 4

봄추위 / 집주인 성길 씨 4

by 불량품들의 사계

봄추위

제비가 돌아오는 3월 3일 날 이사를 했다. 짐을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트럭 두 대였다.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나 망했다고 트럭 한 대 값은 받지 않았다. 정신없어서 친구들은 오지 말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길에서 구경을 하고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장롱과 책장을 집안으로 옮겼다. 둘 다 마루까지는 들어왔는데 세워지지 않았다. 집은 가지가지했다. 회의 끝에 장롱은 아래 서랍을 자르고, 책장은 꼭대기를 자르기로 했다. 짐들은 대충 자리를 잡았다. 다들 돌아갔다.

집을 고치고 집 정리를 했지만 아무리 고쳐도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추위였다. 삼월인데도 밤이 되자 창문에 성에가 꼈다. 창밖 호두나무 그림자가 벽을 비치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산이를 꼭 껴안았다. 산이는 답답해하면서 나를 밀어냈다.

공사할 때에 이렇게 추운 줄 몰랐던 것은, 주인이 연탄불을 피워놨었다. 그때 나는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해 있을 때만 왔다 갔다 해서 밤에는 이 집구석이 이글루 같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겨울 한복판도 아닌데 이렇게 손이 차가우면, 한겨울에는 총 맞은 참새처럼 굳지 않을까. 새들의 찬 발들은 어디로 자러 갈까. 찬물보다 시린 손을 가만히 입술에 갖다 댔다. 아! 이 집은 그냥 추웠다.

까딱하면 꺼져버리는 연탄 갈 일도 막막했다. 연탄불에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을 생각했는데... 종 쳤다.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배가 고팠다. 이사하며 점심 대접할 때 남은 소주를 땄다.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고마웠고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며 ‘깡’소주를 홀짝거렸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내가 나를 동정하면서도 용기가 생겼다.

‘그래, 세상아, 니가 나를 돌덩이처럼 걷어차도 니 발뿌리만 아프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니가 발로 차 봐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멈춘 곳이 내 자리다! 술이 오르자 그것도 잠시. 이 집에서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잡념으로 빈 소주병을 줄 세우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산이가 밥 달라고 낑낑거렸다. 이불을 얼굴까지 잡아당겼다. 아,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집주인 성길 씨

집주인은 나를 찾아오는 지인들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앞집 아줌마는 나에게 말을 붙이려다 그냥 갔다.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사하자마자 내차 소렌토를 마당 입구에 세웠다. 집수리가 다 끝날 때까지 카페 사장 말처럼 차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었다.

날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수입차를 타고 왔다. 내 지인들이 한 사람씩 나타날 때마다 허물어질 듯한 내 집도 하나씩 변해갔다.

“ 집 보러 온 그날 밤 그 후질구리 했던 그 여자 맞아?.” 그리고 삼만 원 깎아준 것을 후회하며 날밤을 깠을 수도 있다.

이사 와서 알았다. 구순이 다 되신 노모와 사는 성길 씨는 결혼한 적 없는 50대 노총각이었다. 그는 노모 잘 모시고, 못하는 음식이 없었다. 열무, 깍두기, 겉절이, 돼지 뼈 넣고 감자탕, 얼갈이김치는 기본 스텝이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한 산밑에서 차도 없고, 돈도 없고, 일도 안 하는 거 같았다.

그가 자기 텃밭을 가려면 내 집 마당을 지나가야 한다. 그는 고개 한번 내 집 쪽으로 안 돌리고 흔들림 없이 걸어갔다. 그의 텃밭하고 이어지는 마당에 풀이 없을 정도로 걸어 다녔지만, 일부러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도 총각이라 수줍음을 타는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은 거의 매일 떼로 들이닥쳤다. 나 빼고 다들 멋쟁이었다. 머리에 선글라스 얹고 원피스 살랑살랑 수입차에서 하차하는 친구들을 보고 성길 씨의 눈빛은 변해갔다.

친구들은 날마다 평상 위에 그늘막을 치고 그릴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내 친구들은 집주인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고 그에게 술을 대접했다. 그는 술을 받아먹고 취해서 평상 앞에 서서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들끓는 여자들 덕에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친구들이 올 때마다 맨 정신으로는 근처도 못 오고 술 한잔 걸쳤을 때만 합석을 했다. 어쨌든 그는 언제부턴가 못 보던 줄 잡힌 두 줄짜리 추리닝을 입고 거만한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다녔다.

“그렇지 자기가 바위여! 뭐여 성직자여?” 주인집 성길 씨 의지는 꺾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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