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꼬라지 2

집 꼬라지 2

by 불량품들의 사계

집 꼬라지



다음날 오전에 연주 동생과 산이를 데리고 이사할 고골 집에 갔다.

연주에게 집을 보여주고 '잘 다듬으면 괜찮겠네' 그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연주는 자신의 집을 예쁘게 꾸며 잡지에도 실렸었다.

멀리서 집이 보이자 “옴매!” 깜짝 놀라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버렸다. 완전 폐가였다. '이걸 연주에게 보여줘? 말어?' 아무리 친한 동생이지만 집을 보여주기 창피했다. 내 속도 지랄 옆차기 같은데, 집까지.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려 연주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자고 했다.

차를 몰며 동네 구경하는 척했지만, 머릿속은 지진이 나고 있었다. 동네를 도는데 위로 갈수록 집들이 예뻤다. 기절하기 직전 폐가 같은 집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담이 없는 집들은 대대손손 사는 집 같았다. 집마다 호두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가 있었다. 남한산성 법화사지와 벌봉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오디나무와 밤나무가 천지였다. 계곡물은 얼어 얼음 바위 같았다.

입구에 연탄재가 쌓여있는 낡은 작업복 같은 집 한 채도 있었다. 개들은 나무에 짧은 줄로 묶여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짖고 날뛰고 있었다. 마당에 물그릇은 얼어있었다.

십 미터 떨어진 곳에 마을회관 깃발이 보였다. 마을 한가운데로 난 길에 화장지 물류창고와 이불 창고가 있었다. 그 아래 내가 이사할 폐가가 있었다.

폐가 아래 오른쪽으로 생수 물류창고와 이 층집 두 채가 얌전히 있었다. 담벼락에 갇힌 전원주택 몇 채도 보였다. 대낮인데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차도 다니지 않았다. 새 지저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뿐이었다.


차를 공터에 세웠다. 차에서 천천히 내려 산이를 안고 울도 담도 없는 마당 입구에 멈췄다.

“설마, 이 집이야?”

연주 동생은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집 꼬라지 보고 놀랐으니 연주는 어땠겠는가, 환장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붕은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대머리였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왔다. 거무스름한 시멘트벽에 출입문은 찌그러졌고, 바닥은 처마 낙수에 깨져있었다. 겨울이라 더더욱 모든 게 우중충했다. 맨몸인 나무에 몇 개 남은 마른 이파리가 간당간당 나부끼고 있었다. 처음으로 호두나무를 보았다. 나무 몸통을 쓰다듬었다. 폐가 뒤에 붙어있는 주인집은 그나마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덮여 있어 봐 줄 만했다.

주인집 출입문은 비닐에 싸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텃밭 끝에 보이는 빛바랜 연두색 이동식 화장실은 가관이었다. “설마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거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짜 이동식 화장실을 써야 하나? 내가 얼마나 추위를 타는데. 이사 오려는 마음을 거의 먹었는데 어쩌나. 요즘 세상에 밖에서 일보는 집이 있을까. 내가 자연인도 아니고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진짜 머리에 지진이 났다.

꼼짝 않고 서 있는 연주에게 내려오라는 눈짓을 했다.

연주는 한숨을 쉬다 말고 아예 길 밖으로 가버렸다.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폐가의 지붕을 덮은 천막이 쳐져 천막을 쇠꼬챙이로 벽에다 받쳐놓은 것이다. 하필이면 길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쪽이었다.

폐가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노숙자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록 비바람에 젖고 눈보라에 으스러져도 어엿한 "주소가 있는 집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 혼자 좋게 생각한 것이다. 기침이라도 하면 집은 공중 분해될 것 같았다. 이런 집을 잘못 계약했다간 동네 이름 고골처럼 골로 가는 건 아닌지. 아무리 내 별명이 노숙자, 날것, 동서남북, 오지랖, 상설매장이고 집에 욕심이 없다지만 이거는 아니지 싶었다.

그나마 맘에 든 것은 창문 샷시가 흰색이었다. 교체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바로 집 앞에는 하남시 문화재 82호 연자방아가 있다. 정자같이 보였다. 나의 마음은 벌써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 아, 나는 이때까지 물류창고 컨테이너 이 층에 사는 술주정뱅이 노총각이 연자방아 단골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담이 없는 옆집 잔디마당에서 청색 티를 입고 강아지 ‘럭키’가 놀고 있었다. 마을버스 종점에서 여러 번 럭키를 본 적이 있었다. 이사 오면 우리 강아지 산이를 풀어 럭키와 같이 놀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산이와 나는 묶이고 갇히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이곳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 가까운 곳에 남한산성 줄기가 있다는 것은 선물이었다. 힘들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마다 산이와 남한산성에 올랐다. 내 심정을 산이와 남한산성 에게만 얘기했다. 산이와 나무들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남한산성에 오르면서 이 동네로 꼭 이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폐가이지만 이렇게라도 집이 나온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주 동생은 창밖을 보고 울었다

“ 언니가 왜 이런 집에 이사 와야 하는데? 우리 집에 와서 살아.

“걱정 마, 내가 이쁘게 고칠 것이여.”

그날 이후 그녀는 “언니, 안 얼어 죽었는가?” 안부만 물어볼 뿐,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너무 낡아서 너덜너덜해져 꿰매 입지도 못할 옷처럼 연주는 그 집은 ‘회생 불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와 나의 폐가는 심폐소생술에 간신히 살아나 깔딱 깔닥 숨을 쉬며 잘 버티고 서 있다.★






keyword
이전 01화나는 협상에 약해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