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협상에 약해요1
나는 협상에 약해요
동그란 등이 창밖에 점점이 떠 있다. 깜깜한 공중에 떠 있는 등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강아지 산이는 무릎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2월 말 일요일 저녁이었다.
이곳 남한산성 산밑은 어둠이 쌓여갔다. 나는 땅에 닿기 전 사라지는 눈처럼 녹고 있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별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골 커피숍 여사장이 라면을 끓여 와 냄비 받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라면을 먹다가 온풍기를 끄러 갔다. 온풍기 끄는 것을 보고 금방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라면을 먹고 난 후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 생각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식은 밥처럼 앉아 있기 싫었다.
산을 덮던 눈발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녀가 의자를 잡아당기면서 말을 꺼냈다.
“고골이 그렇게 좋아?”
나는 라면이 걸려 있는 젓가락을 든 채 대답했다.
“네, 좋으니까 방이동서 여기까지 매일 오다시피 허죠.”
“있잖아. 저 위에 폐가가 하나 나왔어.”
허벅지에 앉아 있던 산이가 다리를 긁으면서 낑낑거렸다. 내려달라는 신호였다. 카페에 손님이 있어서 바닥에 내려놓지 못했었다. 손님들이 떠난 자리는 금방 식어버렸다. 바닥에 내려간 산이는 허리를 쭉 폈다.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면 불쌍해 보이지만, 산이 네가 페인트 새로 칠하고 살면 오히려 멋있게 보일 수 있어.” 여사장님 말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 말에 힘입어서 젓가락을 놓았다.
나는 쫓기고 있었다. 매일 두근거리는 불안한 증세에 시달렸다. 불안의 원인은 많이 있었다.
석촌호수 나무에 묶여있는 강아지 산이를 데려온 후, 산이의 분리불안으로 이웃집 항의 때문에 끄덕하면 이사하고, 세를 내준 아파트는 경매로 날아가고, 오랫동안 경영하던 카페도 문을 곧 닫아야만 했다.
가게 앞에 9호선 전철이 들어선다고 땅을 판 지가 십 년, 건물 앞에 주차장이 없어져 버렸다. 손님이 90% 줄었다. TV 에어컨 뒤, 테이블 아래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 파산 선고 직전이었다.
복잡한 사람 관계, 모멸과 상실감, 구설수는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을 한방에 겪고 있었다. 나는 뿌리째 흔들렸다. 난민처럼 잠 못 자고 말라 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막대기 하나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막대기는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 거울은 웃지 않았다. 하루빨리 방이동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도 위로가 필요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검은 비닐봉지가 도로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검은 비닐봉지는 차바퀴를 따라 구르다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뭇가지에 걸려 검은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바람이 거칠게 불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까마귀처럼 울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 찢어지고 펄럭이기 전에는 아무도 내 속사정을 알지 못했다. 검은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이상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줄 알 수 없듯, 봉지 끈을 꼭 잡고 내 안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비닐봉지는 인도에서 차도로 바람 따라 흘러 다녔다. 너덜너덜해진 봉지는 강물 위를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낭떠러지 끝 바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내 등을 누군가 밀어주기를 바랐다. 내 발로 뛰어내릴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뛰어내리면 머리가 깨지든 물속으로 가라앉든 무슨 수가 나겠지 생각했다.
“그럼 지금 당장 가게요.”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서둘렀다. 내가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자 여사장님이 내게 말했다.
“산이 이모, 그냥 걸어가게.”
“왜요? 추운데 차 타고 가요.”
“아냐, 불쌍하게 보이게.”
“......?”
“망한 사람처럼 보여서 월세 깎게.”
“아하!”
“산이 이모, 목도리도 풀어 춥고 불쌍하게 보이게.”
나는 망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며칠씩 세수를 안 하고 다녀 꾀죄죄해 보였다.
저녁 7시이었다. 13살 산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왔다. 산이를 안았다. 내가 늘 다니던 언덕길 이백 미터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백 미터쯤 걸었을까. 어둠 속에서 창고 같은 집이 보였다. 설마 저 집은 아니겠지. 맞았다. 벌써 여사장님이 문을 두드렸다. 삐그덕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술에 취한 남자가 레옹 모자를 쓰고 잠바를 걸치고 헛기침하며 마당으로 나왔다. 남자는 몸이 마르고 키는 크지 않았다. 인상은 선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섰다. 어두워서 남자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지만 50대처럼 보였다.
“사장님, 고골 커피숍 주인이에요.”
“네.”
“사장님 여기 집 내놓으셨다면서요.”
“네네!.”
그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옆에 선 나를 보았다.
“이 동생이 살 건데요. 저기... 보증금은 얼마고 월세는요?”
나는 옆에서 정말 불쌍하게 보이려고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보증금은 천만 원이고요 월세는 30만 원이에요.”
“사장님... 월세 25만 원으로 해요.”
여사장님은 애원하다시피 했다.
나는 자라목을 하였다. 작은 키가 더 작아졌다. 손을 빼서 호호 불었다. 정말 발은 시렸다. 발을 살살 바닥에 굴렸다.
“안 돼요!.”
“아이고 사장님, 이 동생이 망해서 갈 곳이 없어요 오죽하면 이리로 이사 온다고 하겠어요.”
50대 남자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내가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그럼 27만 원으로 해요!”
집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27만 원이요?... 알았어요.”
집 바깥을 둘러보았다. 어두워서인지 여사장님 말처럼 폐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카페 사장님이 옆으로 다가 와 말했다.
“왜 27만 원이라고 말했어. 시간 끌면 오만 원은 더 깎을 수 있었는데.”
“내가 협상에 약해라이.”
산이는 내려가는 길에 똥을 싸려고 길가에서 뱅뱅 돌았다.
나는 가끔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은 손이 목을 잡아 올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마다 내 곁에 작은 신이 있다고 믿었다. 남한산성 북문을 산이랑 오를 때면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힘들어지기 전부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싶었지만, 집값이 비싸 이곳으로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이런 싼 집이 있을 줄이야. 어서 방이동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내 작은 신은 알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산이 사료만 주고 밥도 먹지 않고 누웠다. 설렜지만 두려운 맘도 들었다. 산이가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힘들 때면 오전에는 교회나 성당을 갔다가 오후에는 절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신은 지금껏 이런 나의 변덕과 이기심을 봐주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신과 내기를 해볼 작정이다. 이기면 좋고 내가 져도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