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클로버 연고 6

아시클로버 연고 6

by 불량품들의 사계

아시클로버 연고


다 풀지 못한 이삿짐을 풀었다. 버려도 버릴 것이 생겼다. 돈, 집, 인간들 다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나면 쌓이는 내 안의 찌꺼기 같았다.

어수선한 방안에 햇빛이 사라졌다. 우와 펄펄 눈이 내렸다. 신문지를 벗겨내다 말고 유리컵을 내던졌다. 강아지 산이와 눈을 처음 본 것처럼 마당을 뛰어다녔다. 아. 삼월에 눈이라니, 틀림없이 좋은 징조야! 나와 산이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한산성을 금방이라도 덮어버릴 것 같이 기세를 부리던 눈은 그쳐 버렸다.

주인집 고양이가 밭에서 두더지를 물었다 놓았다 발로 툭툭 치며 장난을 친다. 고양이를 쫓아 두더지를 도망가게 해 주었다. 놀란 두더지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다.

인사동에서 사 와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풍경을 바람이 울리고 갔다. 산이를 안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부풀어 오른 입술이 터졌다. 아시클로버 연고를 찾아와 발랐다. 주인은 음식물쓰레기를 밭에 버리려 나오다 나를 보았다. 그는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먼저 웃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뭇가지에서 까마귀가 날아와 밭에 앉자 해가 저물었다.

그릇들은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산이랑 난방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내가 기어들어갔더니 산이는 난방 텐트가 개집인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패딩 잠바를 껴입은 채 바로 이불속에서 누웠다.

천장에서 부스럭 거리다가 우탕탕 달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쥐 새끼 발 소리 치고는 너무 크게 들렸다. 산이는 예전부터 텐트 안에서 지냈던 것처럼 엎드려 코를 골면서 잘도 잤다.


며칠 전 어린 시절 알게 된 인천서 사는 수선 동생이 놀러 왔었다. 어깨가 차다고 밖에서 햇빛 쐬는 게 낫다고 했다. 그녀는 걱정을 태산처럼 하고 집에 가 난방 텐트를 사서 보냈다. 임숙 친구는 난로를 사서 택배로 보냈다. 봄인데도 이렇게 추운데 난로와 난방 텐트가 추위를 막을 수 있을까. 집은 바람이 바람을 막고 서 있었다.

불안하여 화재보험을 알아봤는데 집에 워낙 오래돼 가입 불가였다.

입김

온다. 잔설을 밟고 새싹이 올라온다. 담 끝에 저녁이 온다.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어 만두 국을 끓였다. 산이는 꼼짝 않고 텐트 안에 누워있다. 사료를 그릇에 담아주고 커튼을 쳤다. 커튼을 치는 것은 혹시 마당을 지나가는 눈과 마주칠까 봐 밥 먹을 때는 내린다. 젓가락질을 빠르게 했다. “옴매” 뜨거워 만두를 뱉었다. 젓가락으로 귀를 잡을 뻔했다. 순간 입천장에 혀를 갖다 댔다. 입천장이 까졌다. 벗겨진 천장 껍데기를 혀로 비비고 말아 손바닥에 뱉었다.

접시에 떨어져 있는 만두 속을 젓가락으로 풀어헤쳤다. 바람을 불어 만두 속을 식혔다.

뜨거운 국물을 입안에서 식히다 아차차 생각난 게 있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지만, 한입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뜨거운 것은 녹이고 찬 것은 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새삼스러웠다. 한 사람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입김인데 식히고 뎁히는 것이 용도에 따라 다르다니.

지금 생각하면 내 맘 가는 대로 누구는 내치고 누구는 받아들이고 그게 다 무슨 소용 있었을까.

커튼을 젖혔다. 밤하늘에 별들이 뿌려졌다. 혼자 만두를 식히다가 녹는 밤. 조용히 머릿속이 차가워지길 기다렸다. 만두 냄새를 맡고 목 안으로 침을 넘기던 산이가 발가락을 핥는다. 계곡 얼음 밑에서 구르는 물소리가 반쯤 구부러진 내 등을 휘감고 흘러간다.

바람은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골통품이다. 바람이 창문을 할퀸다. 손을 비비며 숨을 삼키는 밤이다.

만두피를 벗겨냈다. 젓가락으로 만두 속을 집어 먹었다. 밤이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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