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 풀치 8

노총각 풀치 8

by 불량품들의 사계

노총각 풀치



그는 갈치 새끼 풀치처럼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목을 긁으면서 토하듯 울부짖는다. 짧은 스포츠머리는 성난 수세미 같다. 깡마른 몸에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눈만 뜨면 보이는 40대 후반의 노총각 풀치다. 그를 이사 올 때부터 봤지만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이름도 알 수 없었다. 나 혼자 갈치 새끼 풀치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을 뿐이다. 이 동네 사람인 것 같은데 사는 곳은 모르겠고 미스터리였다. 간혹 집주인 성길씨랑 담배를 나눠 피우는 것을 보면 이 근처에 사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말라비틀어진 사내는 얼어 죽지 않고 까닥까닥 온 동네를 쏘다닌다. 빠진 앞니 사이로 찬바람이 드나들 텐데도 개의치 않는다. 등산복 바지와 후줄근한 하늘색 티셔츠 위에 조끼를 걸치고 돌아다닌다. 간혹 국방색 잠바를 입고 출현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색이 저러해 도대체 무얼 하고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의 차림을 좀 더 살펴보면, 얼굴은 CD 한 장으로 가릴 정도로 작았다. 모델 배정남을 닮았다(술 안 퍼마시고 꾸몄을 때) 그의 눈썹은 숯덩이처럼 까매서 정돈된 느낌이 있네? 하다가도 그 아래로 내려오면 폭 꺼진 눈덩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눈두덩이가 마치 물 한 종지는 부어도 될 만큼 움푹 들어가 있다. 누가 봐도 곧 이승을 떠날 사람 같다. 뼈대그림 같다. 참 모호한 사내다.


우리 집 바로 옆에는 하남시 문화재 제82호 연자방아가 있다. 연자방아 위에 기와를 얹고 보호시설을 둘러놨다. 우리 집 옆에 붙어있어 꼭 우리 집 정자 같다. 간혹 등산객이나 놀러 온 사람들이 이곳을 쉼터처럼 이용한다. 휴일이면 부모님들하고 체험 학습하러 나온 아이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수첩에 그 유래를 적어가면서 손목에 스탬프도 찍는다.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다.

풀치는 날마다 이곳에 와서 지랄 옆차 기를 한다. 그래서 연자방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풀치는 멋대로 연자방아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앉아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가 하면, 휴대폰으로 ‘트롯’을 틀어놓고 술에 취해 드러누워 마구 삿대질을 한다. 연자방아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문화재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데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안동 김 씨 27대손이야” 이 말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비틀거리면서 악을 쓰다 보면 동네 개들이 멀리서 보고 짖는다. 개들도 술 취한 풀치와는 거리를 둔다. 술이 완전히 취하면 발이 코에 닿을 정도로 몸을 말고 드렁드렁 코를 골고 잔다. 그의 온몸에서 누룩곰팡이가 발효되고 있는 시간이다.

술 취한 풀치는 꼭 내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 지른다. 나는 그를 비켜 다녔다. 그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잠이 든다. 종일 노래한 휴대전화는 목도 안 쉬고 취하지도 않나. 배터리가 간당간당할 때쯤 풀치는 귀신처럼 눈을 반 뜬다. 그는 반취반성한 채 걸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나 풀치는 이렇게 곱게 조용히 퇴장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112 신고를 받고 온 경찰차에 실려 간다.


내가 아는 서예준 동생은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는 "스타킹"에 출연해 노래를 불러 우승까지 했다. 영국 성악가 폴포츠 와 공연도 같이 했다.

누구는 죽을 만큼 아파 노래로 버티는데 누구는 노래 부르다가 경찰차에 실려간다.


날마다 풀치 지랄 옆차기와 쇠 긁는 목소리에 내가 미치고 환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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