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 빨간 개 10

똥구멍 빨간 개10

by 불량품들의 사계

똥구멍 빨간 개



경계를 가르던 생강나무 꽃이 샛노래졌다.

내가 통증에 시달려 엎어져 있으면 산이는 저도 책상 밑에서 엎드려 있다.

약이 떨어져 버스 타고 방이동 병원을 갔다. 30년 넘게 이 통증을 달고 산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벌리고 청진기를 갖다 댔다. “아직도 살아있는 걸 보니 죽을병은 아니여”. 진료가 끝나고 예사랑 약국으로 처방전을 들고 갔다. 비가 내렸다. 물 한 모금에 약을 삼켰다. 약사님이랑 수다를 떠는 동안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점심때를 놓쳐 배가 고팠다. 왕복 버스비까지 계산하니 오늘 쓴 돈이 만원이 훨씬 넘었다.

“에라 모르겄다. 일단 먹고 보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내가 카페 할 때 가던 국숫집이 있다. 머리에 빗물을 손으로 대충 털어냈다. 6천 원짜리 국수를 시켰다. 쇠젓가락으로 국수를 젓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입을 손으로 가렸다. 손을 내리고 면발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는데 면이 넘어가지 않았다. 면을 이로 끊고 있는데 오른쪽 뺨을 응시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평상시 같이 밥을 먹던 아는 이웃 남녀였다. 눈인사를 했다.

손등으로 앞머리를 위로 올리고 콧잔등의 땀을 닦았다. 마주친 눈을 의식하면서 두 손으로 냄비를 들어 올려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얼른 입을 닦고 일어나 슬쩍 카운터로 갔다. 평소 습관처럼 저들 몫까지 계산을 해주려다 망설였다. 머리를 수 초 동안 굴리다 포기했다.

귀퉁이도 닳고 색깔도 붉은 작작한 텅 빈 지갑이 정신 차리라고 빈정대는 것 같았다. 내 계산만 끝내고 후다닥 뛰쳐나왔다. 버스비가 달랑거리는 지갑을 주머니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


사는 게 유행가 가사도 아니고 지랄 옆차기 같은 순간이 허다하지만 내 오지랖은 본능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순신 이이 신사임당 유명인사들의 얼굴에 쫓겨 산밑에서 살아서가 아니다. 젖은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낙엽을 밟아 미끄러진 것도 아니고 집이 경매에 날아가서도 아니다. 가게 집행한다는 내용증명을 받아서도 아니다. 그냥 하얀 면발이 그저 고왔을 뿐인데 왜 울컥하고 콧구멍 속이 따가웠을까? 빗줄기가 내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타고 흘러내렸다.


식당에서 마주친 어색한 그들의 눈빛이 빗속을 걷고 있는 나를 헤집고 따라다녔다.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타이레놀 한 알을 침을 모아 삼켰다. 설움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수는 엄마가 묵은 김치를 썰어 면발 위에 올려주던 국수였다. 어린 시절은 배만 부르면 좋았다. 배만 부르면 되는데 왜 어른들은 걱정이 천지인지, 엄마 국수를 먹던 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식당에서 밥만 잘 먹던 내가 혼자 국수를 먹은 모습이 그 친한 이웃 남녀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별것도 아닌 일에 내내 마음을 쓰는 내가 스스로 애달프기만 했다. 아무에게도 들킬 수 없는 뜨거운 빗물이 아랫눈썹을 타고 가슴골로 흘러내렸다.


올림픽공원 남 2문 맞은편에서 버스를 탔다. 하남 서부농협 앞에서 내렸다. 집으로 들어오는 마을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15분 타임으로 배차다. 오늘은 비가 와 20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비는 더 굵어졌다. 기름값 아끼려고 버스 타고 온 것이 후회됐다. 발등까지 젖은 내 모습이 늙은 토끼가 시내 구경 갔다가 도로 위에서 비척거린 것 같아 서글펐다.

고골 종점에서 내렸다. 비에 젖어 집을 향해 걸었다. 추워서 윗니 아랫니가 부딪혔다. 이백 미터쯤 걸었을까. 처음 보는 똥구멍 빨간 개가 갈색 털을 털며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데요, 당신 집이 어디요?”

개가 나를 보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개와 같이 걸었다. 집에 도착하여 타이레놀 한 알을 더 먹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보다 살을 파고드는 통증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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