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는 총알처럼 산 밑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호시절에 뭉쳤던 어제의 용사들, 미선이는 옥경 선영 미정이랑도 돌아가며 통화를 했다. 우리는 내일 당장 뭉치기로 하고 미선이는 집으로 갔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평상 위에 타프를 쳤다. 그들에게 겨우내 찌들었던 입맛을 잡아주기 위해 냉이 쑥 돌나물을 캐왔다. 날씨도 빵빵했다. 용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미선이는 황태포, 전복, 주꾸미볶음, 닭볶음탕을 직접 만들어 차에 싣고 왔다.
먼저 도착한 사촌 동생 옥경이가 머리를 틀어 올리면서 소쿠리에 있는 나물을 보고 말했다.
“내가 사는 양주도 밭에 냉이와 돌나물 천지여.”
“아따 나를 뭘로 보고.”
목포에서 친구가 보내준 꼭꼭 숨겨놓은 건정이 있었다. 나는 비장의 무기 찜기 뚜껑을 열었다.
“어쭈! 우럭 건정 아니여?”
건정이 맛있다는 것을 아는 옥경이는 즉각 반응했다.
“간짓대에 매달아 해풍에 말린 대한민국 최고의 신안 건정! 어쩌냐?”
김을 쐬며 꾸덕꾸덕 쪄 있는 우럭을 보며 둘이 크게 웃었다.
그사이 브레인 미정이가 삼겹살이랑 음료수 화장지를 잔뜩 싣고 도착했다.
나는 우럭 찐 것을 평상으로 내왔다. 일회용 버너에 불을 켰다. 먼저 대포리를 넣고 샤부샤부 국물을 우려냈다. 국물에 전복 주꾸미 섬초 시금치 봄동과 주인집 텃밭에서 슬쩍 뽑아온 대파를 넣고 끓였다. 산 밑에서 구경하기 힘든 생선이라 입안에 더 짝짝 달라붙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할 줄 안다. 익은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전복을 숟가락으로 파내어 손에 들고 날것 채로 베어 먹었다.
“애들아! 나 오늘 바다를 전복시킬란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짠짠짠“건배!”를 합창하였다.
나는 에미 애비도 못 알아보는 낮술은 안 하는데 오늘은 소주가 달았다.
“선영이도 오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아쉬워하면서 술을 입안에 털었다. 광주에 사는 선영이는 다음에 보기로 했다.
이십 대 후반이었던 미선이는 차에 골프 가방을 싣고 다녔다. 나는 그녀가 공을 치러 간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석촌호수 근처 술집을 날리고 다녔다. 한마디로 폼생폼사였다. 서울사람들은 자기 집에 초대를 잘 안 하고 남의 집 방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선이는 그 시절 지인들을 불러다 집에서 밥을 해먹이 곤 했다. 그때 그녀의 손은 솥뚜껑만 했었다. 사촌 동생 옥경이와 미선이는 절친이었다. 나는 옥경이네 놀러 왔다가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동생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나도 서울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그 시절 노래 못 부르다 죽은 귀신 한을 풀어주듯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랄 것도 없이 테이블에 올라가 탬버린을 머리 어깨 배 다리에 묘기를 부리듯 쳐대며 놀았다. 나는 생수병에 동전을 넣고 흔들었다. 다들 노래 한 가닥 하는 선수들이었다. 노래방이 시시해지면 단란주점을 갔다.
우리는 놀다 질리면 바다로 산으로 쏘다니며 청춘을 우렁차게 구가하던 전우들이었다.
평상은 옛날이야기로 달아올랐다. 나는 마이크 대신 술병에 숟가락을 꽂아 미정이에게 들려줬다. 위트로 뭉친 미정이는 일어서서 화장지를 어깨에 걸치고 ‘미운 사랑’을 간드러지게 불렀다. 우리는 숟가락을 옮겨 다니며 평상과 쟁반과 그릇을 탁탁 쳤다. 맛보기로 서로의 머리를 숟가락으로 한 번씩 쳐주었다. “띵디리딩띵띵띵” 박자를 맞추다 말고 미선이가 말했다.
“그때 언니가 노래로 쓸었잖아. 술 많이 얻어먹었는데.”
미선이는 노래는 못 하지만 마이크는 끝까지 잡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노래도 맨날 해야 늘지. 인자 노래 못해야.”
그 시절 몰려다니면서 좋은 일만 있었을까?
섭섭하고 서운할 때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누구 한 사람 서운했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호흡을 탁탁 맞추었다.
나뭇가지들은 앞을 가려 안 보인다고 옆 가지를 부러뜨리지도 목을 꺾지도 발을 걸지도 않는다. 마당에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도 제각각 의젓하게 참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는 체력이 안 돼 옛날처럼 놀 수 없을 줄 알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아직도 열이 뻗쳤다. 출입구 옆에 소화기가 눈에 보였다. 나는 소화기를 들고 트럼펫을 불었다.
미선이는 일어나 원투 스텝을 밟았다. 옥경이는 박수를 쳤다.
“아! 숨차다” 우리는 술로 목을 축이고 다이아몬드 스텝 대신 허공을 향해 찌르기를 한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