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거름을 사 와 차에서 혼자 날라 밭에 뿌렸다. 속눈썹만 한 상추 씨앗도 뿌렸다. 진눈깨비라도 맞으면 얼어버릴 것 같아 천막을 밭에 덮었다.
“그걸로 안 될 거예요. 낮에는 햇빛을 받아야지 썩을 수도 있어요.”
성길씨는 거름 한 포대 날라주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 사장님은 여자가 하는 일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는 신조라도 있소?’ 성길씨 뒤통수에 대고 묻고 싶었다.
나는 이사 오기 전 주말농장을 몇 년 했는데도 아직 밭일이 어설펐다. 일단 천막을 걷어냈다. 눈을 비비고 봐도 씨앗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바람이 사납게 불었다.
나는 방 안에 있으면서 츄리닝 입고 이불로 똘똘 싸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있었다. 이곳에서 살기 전까지는 전기장판을 모르고 살았다. 전기장판을 켜면 전자파로 죽는 줄 알았다. 추워서 얼어 죽으나 전자파로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이제는 예준이가 가져온 전기장판을 끼고 산다.
천장에서 밤마다 정체불명의 것들 달리는 소리에 잠 못 들고 있었다. 게다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깜깜한 마당으로 나갔다. 바람 끝이 손등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실밥보다 작은 상추 씨앗은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씨앗들아 느그들 대단허다” 한 시간만 서 있으면 졸도할 것처럼 매서운 꽃샘추위인데. 하기야 공짜 같은 봄이 어디 쉽게 와줄까.
내일 당장 투명비닐을 사다가 바람 한 올 들어가지 않게 덮어주고 돌로 눌러주어야겠다.
성길씨가 낮에 거름을 뿌리는 내게 말했다. 닭똥거름은 독하니 거름을 주고 난 일주일 있다가 씨앗을 뿌리라 했다. 일찍 먹을 욕심에 거름을 주자마자 씨를 뿌리면 썩을 수 있다는 게 고수의 충고였다. 성길씨는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생긴 건 그렇지 않은데 급해”. 그러고 보면 나는 흙도 비료도 씨앗도 계절도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였다.
날 새자마자 당장 투명비닐을 사다가 밭 전체를 덮어버렸다. 바람 한 올 들어가지 않게 덮어주고 돌로 눌러주었다.
“씨앗들아!따땃하지? 푹 자다 일어나거라.”
지지대 역할
씨앗을 뿌린 흙 속에서 잔털들이 들썩거렸다. 열무 상추 깻잎 쑥갓 청경아욱이 텃밭 이마 위에서 따닥따닥 일어서고 있었다.
눈곱만 한 부호들이 밭을 뒤덮었다. 제철보다 빨리 모종한 토마토 가지 고추가 몸살을 끝내려는 듯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친구들에 얼른 주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고 말았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모종들이 살아나려나 조마조마했었다.
나도 이제야 조마조마한 이 집을 알아가는 듯 마당에서 기척이 들렸다.
주인할머니 노인학교 봉고차 타러 가며 신발 끄는 소리가 천천히 들리고, 밭일 나가는 뒷집아저씨 삽이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가 멀어졌다.
산이를 안고 창밖으로 밭을 내다보았다. “저것은 뭐시여?” 지지대가 고춧대 옆에 박혀 있었다. 놀라서 새집 지은 머리칼로 밖으로 나갔다. 주인이 고춧대 옆에 지지대 두 개를 받쳐놓고 나머지 지지대는 밭에 던져 놓았다. 작물들 줄기가 자라 휘어지면 말짱 도루묵이니 지지대를 세워 둔 것이다. 곧 지지대를 세워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다.
성길씨는 마당을 지나다니다 내가 하는 게 시원찮아 보였지만 부끄럼을 타서 차마 나에게 말을 못 한 것 같았다. 지지대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받쳐주는 것이다. 나는 왠지 좋으면서도 시답지 않았다.
“헐, 이 노총각이 날 좋아하는 거 같은디?”
텃밭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쑥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낌새를 챘다.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사람 감정은 얼굴이 가장 취약하다고 했는데 성길씨는 표정으로 못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주인이 지나치게 나에게 관심을 보여도 부담이 될 거 같았다. 다행히 노총각 성길씨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나로서는 홀가분했다.
우리는 밭일을 하다가도 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각자 집으로 들어갔었다. 밭 가운데 삽만 세워져 있었다. 삽은 혼자 사는 우리들 처지 같았다. 남자인 집주인이 가만히 있는데. 내가 먼저 “평상에서 밥 같이 먹게요”라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나는 그가 던져둔 지지대 작대기를 세어보았다.
“옴매 하나 둘 셋!...... 몇 개야?”
내가 모종해 놓은 수보다 모자라게 작대기를 갖다 놓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지지대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더는 기다릴 필요 없다고 안방으로 들어가라고 지화자 난리 차차차였다.
“그리 좋으면 느그들이 들어가라. 아무리 급하다고 털도 안 뽑고 닭 잡아먹냐?”
그나 저나 집주인이 던진 저 지지대는 지지대가 아니라 나중에 알았지만 내 속만 긁어대는 막대기였다. (내가 오히려 이 집을 받치고 있다는 마음이 살수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