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송파 방이시장에 갔다. 가게마다 카네이션을 팔고 있었다. 노상에서 젊은 사람들이 꽃을 팔고 있었다. 나는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꽃을 팔고 있는 할머니 앞에 멈추었다. 할머니에게 카네이션 두 송이를 샀다. 옷가게로 가서 장미꽃이 화사한 윗도리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카네이션 한 송이와 옷을 주인집 할머니에게 드렸다. 나머지 한 송이는 저 쪽으로 건너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차차, 젊었을 때 산속에 들어가 아직도 누워있는 아부지 생각을 못했다.
“아부지 미안허요. 내년에는 안 잊을게요.”
저녁 반찬으로 밭에서 치커리와 상추를 따 상을 차리고 수저를 막 드는 중이었다. 그때 성길씨가 고기나 먹으러 가자고 전화를 한 것이다.
“집에서 먹을라고 밥 차리고 있는디요”
“우리 엄마 옷 사다 줘 고마워서요. 같이 고기나 먹게요.”
성길씨 말이 간곡하게 들려 ‘그래 고기가 맛있재’ 수저를 던져놓고 마당으로 나갔다. 성길씨는 할머니랑 벌써 나와 있었다. 뒷방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도 같이 가자고 성길한테 내가 말했다. 그가 물었더니 이미 밥을 드셨단다. 풀치도 생각났지만 꺼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풀치 말을 할 때는 성길씨 눈치를 보게 되었다.
성길씨가 택시를 부른다고 휴대폰을 꺼냈다.
“내 차로 가게요”
“소주 한잔 하게 택시 불러 타고 갑시다.”
식당은 집에서 3킬로쯤 떨어진 곳이었다.
지나다니면서 내가 자주 본 식당이었다. 들어와서 보니 고급스러웠다. 나는 그와 그의 어머니 맞은편에 혼자 앉았다.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곳이에요.”
성길씨는 내게 메뉴판 볼 시간도 주지 않고 등심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성길씨는 친구도 불렀다. 처음 본 성길씨 친구가 내 옆에 앉았다. 그 순간 풀치가 잠깐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할머니 앞 접시에 고기를 집어 놔 드리고 젓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고기 먹으면 나는 원래 밥을 안 먹는다. 그는 친구와 나에게 소주를 따르고 소주병을 세웠다. 나는 할머니에게 소주를 따랐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한 모금했다.
“어허, 엄마는 술 마시지 말라니까.”
성길씨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따, 오늘 기분 좋은 날인디, 할머니도 한 잔 정도는 해도 쓰겄구만”
나는 할머니에게 잔을 입에다 갖다 대라는 시늉을 했다. 그에게 폭탄주를 한잔씩 하자고 할까 하다 말았다. 나는 폭탄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기분 좋은 날 한 번씩 마신다. 오늘이 딱 날인데.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참기로 했다. 할머니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한 모금씩 마셨다. 성길씨는 더는 마시지 말라고 할머니의 소주잔을 탁자 끝에 밀어 놨다. 성길씨가 노모를 저렇게 단속하는 것은 내 앞에서 행여나 실수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고골에 온 후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 엄마랑 여기 같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저녁 평상에 앉아 상추쌈을 먹을 때, 하늘에 별들이 깜빡거릴 때 엄마 생각이 났다. 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별까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지상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별이 되어 깜박거린다는 동화를 믿고 싶어졌다. 혹시 지상에 남은 자식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저렇게 깜박거리면서 신호를 보내는 걸까.
잠시 나는 딴생각에 잠긴 채 된장국을 떠먹고 있었다. 그사이에 고기가 몇 점 밖에 안 남았다. 나는 소주 두 잔과 고기 세 점이나 먹었을까? 등심은 흔적이 없고 철망만 까맣게 타 있다.
성길씨가 젓가락을 들고 식당 직원을 불렀다.
“여기 삼겹살 이인분요.” 내가 시켜버렸다. 지금 먹은 것과 택시비까지 합하면 거의 십만 원쯤 나올 것 같다. 성길씨 일 나가면 하루 일당이다. 바싹 구워진 삼겹살을 집으려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돈 낸 것이 아닌데 젓가락 자주 가는 것이 아닌 거 같았다. 성길씨 친구는 술 취했다고 먼저 일어섰다. 성길 씨가 요 며칠 일을 다니더니 주머니가 두둑해졌는지 술과 고기를 더 먹자고 했다.
“이렇게 쏘고 내일 아침 후회할 거 같은디요?”
“안 해요.”
식당 테이블에 셋이 앉아있는 풍경은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와 밥 먹는 딱 그 모습이었다. 성길씨와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고 마을에 소문이 돌까 은근히 불편했다.
나는 일부러 성길씨를 아저씨! 하고 목소리를 높여 자주 불렀다. 그러다 순간 주춤해졌다.
만약 성길씨가 옷을 멋들어지게 빼입고 인물도 훤했다면 내가 이랬을까? 나는 정말 쪼잔한 여자였다. 성길씨가 이런 내 속마음을 알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 같은 여자랑 결혼하려고 했으면 나도 진즉 갔겠지요” 성길씨도 한마디 했을 것 같다.
그와 나는 똑같이 결혼 한번 못했다. 누가 누구를 재고 지랄인지 스스로에 민망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구십 다 되신 할머니가 요양원 안 가고 아들하고 사는 것이었다. 성길씨가 예순이 다 되도록 장가 못 간 이유가 그동안 궁금했었다. 오늘 수수께끼가 풀렸다. 성길씨 밑으로 여동생이 네 명이 있었다. 소위 시누이 넷에 나이 든 노모를 모시고 시골에서 사는 돈 없는 노총각, 그것이 성길씨였으니 누가 시집을 오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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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된장국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식당을 나왔다. 성길씨는 택시를 불렀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집에 도착하자 고양이들이 마중 나왔다. 약간 탄 삼겹살을 싸 와 고양이 밥그릇에 던져주었다. 방으로 들어와 사료도 안 먹고 나를 기다리는 산이를 꼭 안아주었다.
할머니가 나팔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내년 어버이날에는 나팔꽃 수가 놓인 풍기 인견 원피스하고 속옷 한 벌 사다 드려야겠다. 칠월이면 할머니가 심은 나팔꽃이 철조망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아침마다 기상나팔을 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