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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Oct 30. 2022

변화의 파도 속에서 춤추기

오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

보통 담임을 맡게 되면 3월 2일에 아이들을 처음 만난다.

보통 3월 2일에 만나는 아이들은 교사에게 우호적이다.

보통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3월 2일은 중요한데, 새로운 공간에서 함께 지켜야 할 규칙과 문화를 세팅해야 하기 때문이다(첫날 교육해야 아이들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다).

보통 교사로서 연차가 쌓이다 보면 이러한 규칙과 문화에 대한 자기만의 틀이 잡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지.

운수 좋게 1학기에 대학원으로 연구 파견을 다녀왔다. 무려 '수학과학우수교사 특별연수'라는 거창한 이름의 파견을(될 때만 해도 좋았지).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마음껏 연구를 하다 돌아온 2학기의 9월은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2학기에 복직하면 '과학'을 맡아 가르칠 수 있는 교과전담을 주겠노라 약속하신 교감님은 9월 1일 자로 전근을 가셨고, 나를 어딘가로 배정해야 하는 새로운 교감님은 학교에서 가장 급한 불을 끄기에 이르셨는데, 내가 꺼야 할 불은 2학기에 담임이 교체된 반에 투입되는 것이었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반에 문제가 있어서 담임이 교체가 된 것이라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라도 있었을 테니. 이전 담임 선생님은 아내가 출산을 하여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담임 자리가 공석이 된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이전 담임 선생님(무려, 잘생긴 젊은 남자 선생님)에 굉장한 애착을 가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9월 1일, 이전 담임 선생님 대신 나를 마주하게 된 아이들의 시선은 가히 원망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마치 이전 담임 선생님을 밀어내고 어디선가 새로 나타난 빌런이었달까. 이전 선생님 어디 갔냐며 나를 붙잡고 오열하는 아이부터, 그동안 정을 주었던 선생님이 어디론가 떠나 버린 이 기막힌 상황에서 마음 둘 곳을 잃은, 26개의 동공 지진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간 갖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고이 접어 날려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갖고 있던, 얼마간 자신했던 막연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지 혼미해진 정신을 다잡고 생각하다가 나의 방식대로 변화를 일으키는 대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간 익숙하게, 어쩌면 나의 입맛에 맞게 선별된 교육활동들로 세팅하는 대신 기존 교사가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 나를 밀어 넣어 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이 교실 생태계에 스며드는 수밖에는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뀐 것도 혼란스러울 텐데, 반에서 하는 온갖 규칙이나 생활들이 바뀌면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에 입장하였더니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받아들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교육활동들도 늘어가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게 친근감을 갖고 다가오면서 관계에 진전이 생긴 것이다.


이 사건에서 발한 생각을 넓혀 보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내가 가진 신념과 교육활동을 맞다고 고집하며 적용하기보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사회변화 속도가 가속화된 지금 교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믿는 신념만큼 무서운 게 없는데, 이번의 사건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잠식되어가고 있던 생각을 점검해볼 수 있어 굉장히 신선했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완고해져 버린 나의 틀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 것 같다.


그렇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때, 점차 나이가 들어서도, 세대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미래에서도, 아이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행복 회로를 돌려 보며 늘 '변화'에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교사이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둘러싼 알을 깰 수 있는, 변화의 파도 속에서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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