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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07. 2024

잡담

연속성이 결여된 허무만이 무한히 펼쳐지는 곳, 형태조차 으스러질 강한 억압만이 남은 곳. 둘 중 어느 것이 내가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전혀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다. 양극은 이어진다. 나의 선택이 존중받을 여지가 남아있다면(물론 그럴 리 없지만) 나는 선택을 벗어난 선택을 정할 것이다. 틀린 문제는 아무리 현명해도 틀린 답 이외에 도출해 낼 것이 없다.


무료함이 나의 발걸음을 끌고 나왔다. 예상보다 많이 떨어진 기온이 불편했지만 기분은 상쾌하게 만든다. 얼어버린 바닥은 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품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은 더욱 웅크림을 유발한다. 아무것도 포용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점점 뭉쳐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취해지는 나의 반응은 본능적인 행동일 테니 거스르지 않는다. 수긍하고 행한다. 겉으로 드러난 귀는 지나는 바람에 모든 열기를 빼앗기고 고통이 커져간다. 그럼에도 저 멀리서 들리는 불쾌한 경적은 깔끔하게 고막에 맺힌다.


무엇을 하든 적당히 해왔다. 적당히 잘해왔다. 그 적당함은 모든 불안요소들을 제거하기에 충분했지만, 딱 그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그 미묘한 한 발자국 너머를 쳐다보지 않던 것이 나의 방법이다.


주파수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접해보는 형식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교류의 마음이 결여된 형태, 물론 그것조차 주관적인 나의 판단이지만. 아무리 넓게 둘러보아도 놓치는 사각지대는 남기 마련인가 보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던 것이, 노력을 줄일 방법으로 바뀌고, 그럴만한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 그조차도 번거로움으로 치부하는 것은 체력이 부족해서이다. 심력이라 부르는 게 조금 더 맞는 표현일지 싶다. 애쓰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시간과 경험은 그 과정을 더욱 간소화시키고, 어느 순간 나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부대끼는 것을 피하던 인간의 마지막 선택이 태양계를 벗어나 무생의 공간에서 두둥실 거리는 것이다. 문제라고 해야 하는데 문제의식조차 흩어진다.


반듯하게 접힌 슬픔 위로 난잡하게 펼쳐지는 미련은 모든 풍경을 어지럽게 만든다.


채도가 낮아진 겨울하늘은 새들의 그림자가 잘 어울린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일사불란하지만 정갈하지 못하다. 떠나는 중인지 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움직일 뿐인데 구분 짓는 것은 사람만이 하는 생각이겠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쓱 미끄러진 덕분에 허벅지부터 허리와 등 가운데 언저리까지 순간 힘이 들어갔다. 바짝 긴장한 근육들이 조심하라며 경고를 보내고 심장은 박동수를 조금 더 타이트하게 울린다. 순환 속도를 끌어올리며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한다. 넘어지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안심시키는 뇌와는 다르게 한번 가속도가 붙어버린 것들은 다시 리듬을 되찾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둥둥 울리는 소리가 고막까지 올라와서 더 의식적으로 들리게 만든다. 외부의 소음보다 나의 심장소리가 생존에 필요하다 느껴진 것이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과정이 재밌다. 발바닥의 감각을 더 의식하며 천천히 다시 걷는다.


희로애락을 완전하게 벗어난다면 아무렇지 않아 질 것이다. 원하는지 아닌지는 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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