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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08. 2023

끝이 없는 여행

제주 동쪽을 향해

"시아야 우리 3박 4일 여행 가자."

"정말? 진짜야? 우리 그렇게 오래 여행 갈 수 있어?"

"그럼 이제 엄마 아빠 가게 안 나가도 되니까 갈 수 있지. 이제 시아랑 실컷 놀 수 있어."

"오예. 신난다~"


가게가 정리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시아와 여행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당일치기가 아닌 3박 4일로. 예전부터 1박 2일 놀고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시아. 엄마, 아빠 일 때문에 여행을 가도 낮에만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돌아와야 했던 일상.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시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제주도 최남단에 살고 있던 우리. 항상 돌아다녀도 제주도 서쪽에만 있었다. 동쪽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1시간을 넘게 가야 했으니. 육지에 있었으면 가깝다고 생각했겠지만 제주도에서 1시간은 엄청 먼 거리다. 그렇기에 이번엔 동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4일 동안.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표선으로 가기로 했다. 북동쪽은 처남이 예전에 펜션을 하던 곳이라 가봤기 때문에 가보지 않았던 남동쪽, 제주도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 표선을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로 잡았다. 표선엔 뭐가 있을까? 시아와 가볼 곳을 찾아보았고, 숙소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계속 따뜻했는데 우리가 여행 가는 그 기간만 갑자기 추워진다니. 그것도 센 바람과 함께. 하지만 우리는 일정을 바꿀 수 없었다. 어떻게 세운 계획인데. 시아가 그렇게 기다리고 고대하던 여행인데(나와 아내도 들떠있었다). 궂은 날씨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해를 가린 먹구름을 지표 삼아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코코몽 파크'. 다행히 동쪽으로 오니 날씨가 조금씩 좋아졌다. 오는 동안 중간중간 비가 내렸지만 도착하니 살짝 맑게 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의 첫 목적지. 신나하는 시아와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기구들이 너무 많았다. 집라인도 있었고, 카트도 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조금한 동물들도 있었는데 직접 먹이를 줄 수 있어 시아가 너무 신나했다. 특히 미어캣에게 밀웜을 직접 주었는데 밀웜을 보자 시아가 엄청 놀랬다. 징그럽다며.


겨울의 제주는 따뜻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예쁜 동백꽃을 볼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장점도 있다. 여기 코코몽 파크에서도 중간중간 동백꽃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데 너무 예뻤다. 시아와 함께하는 동백. 우리의 긴 여행의 시작을 반겨주는 것 같았다.


숙소는 코코몽 파크 바로 옆에 있었다. 신나게 놀고 숙소로 가는 길은 너무 즐거웠다. 표선까지 오느라 지친 몸과 코코몽 파크에서 신나게 뛰어논 피곤함이 우리를 숙소로 인도했다. 다시 집으로, 가게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우리를 잠으로 이끌었다. 살며시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꽤 오랜 시간 동안 꿈나라에 머물렀다.


잠을 깨운 건 배꼽시계의 알람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가서 흑돼지를 먹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는데 밖을 보니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식당에 도착했는데 타자마자 도착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고깃집을 하고 있지만 흑돼지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일부러 온 것도 있다. 다른 가게는 어떻게 장사하는지, 고기 맛은 어떤지, 반찬은 어떻게 나오는지. 벤치마킹이라고나 할까. 좋은 것은 기억해 뒀다가 응용하고, 안 좋은 건 버리고. 일을 정리했는데도 직업병은 어쩔 수가 없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여행의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일 걱정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기쁘게 만들었다. 이 날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잘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다음날에는 제주민속촌으로 갔다. 제주도의 옛날 모습을 시아에게 보여주고, 재미있는 공연도 있다기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갔다. 칼바람이 우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제주 전통 가옥을 구경하고, 실제 똥돼지도 보고, 제주에서 자라는 모든 종류의 귤, 한라봉도 보고. 육지 민속촌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선 날라리의 공연이었다. 어찌나 재미있게 말을 풀어가던지. 춤과 재미있는 입담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버렸다.


입구에서 진행한 '어서옵쇼'를 보고 시아가 푹 빠져버렸다. 빨간 모자 쓴 언니가 너무 좋다고. 공연하는 분들도 시아가 호응을 잘해주니 더 적극적으로 시아에게 다가왔다. 정말 관객과 하나가 되어 진행된 공연이었다.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너무 인상 깊었고 다음 공연이 기대되었다. 시아도 빨리 다음 공연 보러 가자고 난리였다. 하지만 때가 있는 법. 아직 다음 공연까지는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공연 시작 전까지 다시 민속촌을 구경하고 있는데 공연했던 분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역시나 시아는 그분들께 다가갔고

"공연 너무 멋있었어요." 수줍게 이야기했다.

빨간 모자 쓴 분도 다시 본 시아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지나갔다. 활발한 시아가 수줍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얼마나 좋았으면.


다음 공연장으로 갔고 역시나 공연하는 분들이 반겨주었다. 벌써 세 번째 만남. 이제는 바로 옆에 앉아 같이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고. 시아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셨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시아도 눈을 떼지 못했고 직접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객과 하나가 되는 공연.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을 시샘이라도 한 듯 문제가 생겨버렸다. 처갓집에 문제가 생겨 아내만 서울로 올라가야 했던 것. 같이 가자고 했지만 혼자 가도 된다고, 새벽에 갔다가 저녁에 올 거라고, 제주도 와서 처음으로 긴 여행인데 시아 실망시키기 싫다고.


새벽에 아내를 공항에 내려주고 뒷자리에 앉아 자고 있는 시아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부모라는게 이런거구나. 자식을 위해 무엇이던 희생할 수 있는 사람.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을.' 특별히 힘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내가 제주도에 오고자 했던 것도 시아 때문이었으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아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숙소에 와 시아를 재우고 아내 없이 무얼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 때문에 야외 활동은 힘들 것 같았다. 시아도 피곤했는지 늦게까지 잠을 잤고 일단 나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 민속촌 근처 표선해수욕장 앞 햄버거 집이 생각났다. 바다를 보면서 먹는 햄버거. 위치가 너무 좋아 꼭 가보고 싶었다. 시아도 감자튀김을 좋아하니 간단히 점심 먹기에 딱이었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텅 빈 바다를 보며 먹는 햄버거는 꿀맛이었다. 시아도 연신 감자튀김을 입에 넣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시아와 단둘이 남게 되었지만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 '시아와 또 어떤 추억을 쌓을까.' 햄버거를 먹으면서 시아를 보면서 계속해서 바다에 물어보았다. 바다의 대답은. 아무말 없이 우리를 불렀다.


표선 해수욕장.

정말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너무 멋있었다. 여름에 꼭 다시 오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살짝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 바다에는 시아와 나 단 둘 뿐이었다. 왜 바다가 오라고 했을까. 이곳에서도 시아와 추억을 쌓으라고? 넓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추위를 날려보려 했지만 거친 바닷바람이 우리의 몸을 더 춥게 만들었다. 역시 자연을 이기기엔 인간은 너무 작은 존재였다. 결국 차로 도망가고야 말았다. 그래도 시아와 사진을 찍고 아주 차가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스카이 워터쇼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시아와 볼 만한 공연을 찾았다. 물을 좋아하는 시아에게 딱 맞는 물과 함께하는 서커스였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공연장에는 기다리는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공연은 기대이상으로 재밌었고, 마지막에 출연자와 시아는 사진도 찍었다. 무대 바닥에서 물이 나오고, 갑자기 무대가 사라지고 수영장이 나오고, 높은 곳에서 다이빙까지. 눈 돌릴 틈 없이 화려하고 멋진 공연이 계속되었다. 아내도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보는 내내 아내 생각뿐이었다.


저녁에 버스를 타고 아내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고, 우리 세 가족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단 하루 떨어져 있었지만 그 빈자리는 너무 컸다. 이렇게 여행도중 헤어진 적이 없었기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 하지만 우리는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라는 것. 이게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무사히 돌아온 아내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시아와 함께. 이제 떨어지지 말자고.


다시 시작된 여행. 이번엔 '스누피 가든'으로 갔다. 아내도 가고 싶어 했고,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시아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다행히 날씨도 다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을 축하라도 해주듯이 바람도 거의 불지 않고 어제보다 따뜻한 날씨를 안겨주었다. 실내를 먼저 구경하고 넓은 실외를 돌아다니고. 쉴 새 없이 시아 사진을 찍어주고, 투어 버스도 타고. 생각보다 넓고 예쁘게 꾸며진 정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정원 곳곳마다 테마가 정해져 있었고 스누피 캐릭터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지막 여행지는 에코랜드. 여기는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여행의 마지막날, 마지막 여행지에서 드디어 따스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었다. 드넓은 정원에 기차도 탈 수 있었고, 호수옆 산책로를 걸어 다닐 수 있었고, 화려한 동백 숲 안에서 동백꽃과 사진도 찍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봄에 오면 훨씬 많은 꽃들을 볼 수 있었겠지만 겨울은 또 겨울 나름의 맛이 있었다. 눈은 없었지만 겨울의 여왕 동백꽃이 푸르른 잎들을 대신해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너무 아쉬웠다. 조금 더 이 시간에 머물고 싶었다. 너무나 소중한 여행이었기에. 너무 아쉬워 차 방향을 아래가 아닌 위쪽으로 잡았다. 왜 반대로 가는 것일까. 차도 우리의 마음을 알았을까. 멋진 바다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라고. 김녕해수욕장. 여기까지 와버렸다.


제주도에 있으면서 많은 바닷가와 해수욕장을 다녔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함은 변치 않았다. 이래서 바다를 좋아할 수밖에.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우리의 기나긴 여행을 아쉬워했다. 여행의 시작인 첫째날, 신나는 둘째날, 슬펐던 셋째날, 행복했던 넷째날, 아쉬운 마지막 날까지.


"여보야, 우리 그냥 하루 더 있다 갈까?"

"어? 그럴까?^^."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말이었다.

"시아야, 우리 하루 더 있다 갈까?"

"진짜? 당연히 좋지. 더 놀다 가자."

역시나 시아는 무조건 오케이였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을 알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더 집에서 멀어지고 싶은 이 느낌. 우리의 여행은 하루 더 연장되었다.


마지막 날을 보내기 위해 장소로 함덕해수욕장을 골랐다. 예전에 갔었을 때 너무 좋아 한번 더 가기로. 함덕해수욕장은 바다 앞에 바로 숙소와 음식점들이 많아 지내기 편한 곳이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출발.


역시나 함덕해수욕장은 여행의 마무리를 할 곳으로 딱이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밤바다를 거닐고, 바닷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의 여행 일기를 계속해서 써 나갔다. 낙하산 바람개비의 불빛을 쫓으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겠지.'


마지막 날은 잠수함을 타기로 했다. 시아가 예전부터 타고 싶어 했던. 때마침 함덕해수욕장 바닷가에서 잠수함을 탈 수 있었다. 바닷속으로 배 전체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떠있는 배 아래로 들어가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어 시아가 아주 좋아했다. 물고기가 많이 오도록 떡밥도 뿌려주시고, 지나가던 쥐치도 잡아 만져볼 수 있게도 해주시고. 쥐치를 만져보던 시아의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미끌미끌한 것이 아닌 까끌까끌한 쥐치의 촉감. 시아에게는 많이 어색했나 보다. 생각한 것과 많이 틀렸으니.


잠수함도 아쉬웠던지 끝나고 모터보트도 타고 아주 신나게 여행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이제는 진짜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주일의 시간. 우리 가족에게 정말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특히 가게 일을 핑계로 시아와 오랜 시간 놀아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1박 2일이 아닌 그보다 긴 시간을 함께 여행했으니.


역시나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여행도중 계획을 마음껏 정할 수 있으니. 그렇기에 시아와 우리 가족 모두 더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표선을 시작으로 함덕까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마무리.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시아가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가 시아와 놀기 싫어서 안 노느게 아니라는 것을. 엄마 아빠도 시아와 하루종일 놀고 싶다고.


앞으로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서울로 올라가면 시아는 학교를 다니고 나는 회사를 다녀야 하니 긴 시간 여행은 힘들 것 같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더 소중한 것을. 함께 한다는 것. 이것이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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