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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01. 2023

안녕 라니시아

라떼는 말이야

라니시아 1주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회사원이 아닌 자영업자로서의 삶.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점점 늘어 2년, 3년 아니 10년을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멈춰야 할 때가 왔다.


라니시아를 정리하고 서울로 가기로 결심한 날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1주년 행사를 진행하기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저렴하게 판매하기로 했다. 1주년 기념을 핑계로 가게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가게를 계속했어도 진행하려고 했던 일이지만 상황이 바뀌다 보니 조금 더 할인 폭을 늘렸다. 이제는 수익이 아니라 가게 정리가 우선이었기에.


1주년 행사 며칠 전부터 인스타에 홍보를 하고, 매일 올리는 사진에 행사 포스터를 함께 올렸다. 매일매일 하던 일이었는데 느낌이 달랐다. 흥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오픈 사진을 올리고 나면 아내와 회의를 시작했다. 이 물건은 얼마로 할까? 어떤 소품을 이벤트 상품으로 줄까? 상품이 너무 많아 가격 정하는 작업은 며칠 동안 지속됐다.


드디어 행사 첫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당근으로도 많은 문의가 왔다. 1주년 이벤트 효과가 있었다. '그래 손님들 많이 와서 여기 있는 물건 최대한 다 팔자.' 이 생각뿐이었다. 왜냐하면 최대한 많이 팔아야 반품할 물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3주 동안의 1주년 할인 이벤트가 끝나고 나자 가게 안이 허전했다. 새로운 물건을 받지 않고 계속 팔기만 했으니. 물건을 받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처남과 이야기하여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하고 부동산, 당근에 올려놓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물건을 다 빼고 빈 상태로 가게를 내놔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라니시아 자리는 음식점 자리였다. 고깃집, 부대찌개. 그렇기에 가게 안쪽에 주방이 있고, 천장에 덕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고 인테리어만 새로 해서 라니시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이 방어축제거리여서 대부분 가게가 음식점들이었다. 그 때문에 음식점으로서의 수요는 꾸준히 있었던 거였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은 소품샵으로 가게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안을 비워서 음식점으로 새로운 사람을 받는 것이었다.


 달이 지나도록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라니시아를 비우는 것으로 결정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다. 아내와 시아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정하고, 내부를 손수 꾸미고, 제주도를 기억할 수 있는 제주 소품을 파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그대로 누군가가 인수를 했다면 남아 있을 그 모습이 없어진다니.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데로 되지 않았다. 업체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을 이야기하고 최대한 반품을 많이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부분 업체에서 갑작스러운 폐업에 놀라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소품을 받았기에. 결제도 물건 받고 바로바로 해줬기에 업체에서도 좋아하는 소품샵이었다. 그래서 받았던 물건 대부분을 반품할 수 있었다. 역시나 신용은 중요했다. 장사가 안된다고 계속해서 결제를 미루고, 주기적으로 소품을 주문하지 않았다면 많은 물건을 고스란히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품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무렵 가게 안을 정리해야 했다. 텅 빈 진열장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가게가 나갈 때까지는 영업을 해야 했으니. 남은 소품들을 한쪽으로 옮기고 대부분을 카페로 바꿨다. 진열장 밑에서 묵묵히 소품들을 받치고 있었던 테이블이 바깥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테이블이 많았나?' 할 정도로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많았다.


정리된 가게도 카페로서 손색이 없었다. 창문 앞에 쭉 테이블을 배치하고, 테이블 중간중간에 큰 식물화분을 놓고, 테이블 위에는 조금한 꽃화분을 올려놓았다. 제주 고옥 카페가 완성된 것이었다. 당분간은 소품샵이 아니라 라니시아 카페로 문을 열었다. 다행히 손님들도 예쁘다며 칭찬해 주었다. 손님들 칭찬에 기분은 좋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남아있는 소품들만 팔면 끝이었다. 그러면 가게를 음식점으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방법은 당근이었다. 처음 소품샵을 시작할 때도 폐업한 소품샵에서 물건을 싸게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남은 소품들을 내놓은 것이다. 큰 진열장도 함께.


며칠 동안 당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관심 숫자가 올라가고, 문의 오는 사람도 많았고,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전체를 일괄적으로 사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소품샵을 하고 있는 사람이나 준비하려고 사는 사람이 나타나야 하는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애월에서 편의점을 하고 계시는데 소품샵도 같이 하려고 준비하시던 분이었다.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게에 오셔서 소품들을 보고 사시겠다고 하니 너무 기뻤다.


사장님께서 먼저 진열장이랑 소품이랑 다 사겠다고 하셨고, 정말 저렴하게 드린다고 하니 장식장 값은 따로 계산하시겠다고. 소품값 별도로 장식장 값까지 받게 된 것이었다. 정말 좋은 분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까지.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계약금까지 받았으니 거래는 거의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것에 대해 시샘이라도 하듯이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하고 이야기했는데 절대 사지 말라고 하네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안 사신다는 건가요?"

"아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알겠습니다. 잘 이야기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사장님은 너무 사고 싶어 하셨는데 남편분은 이해를 못 했던 거였다. 팔리지 않은 남은 물건을 왜 사냐며. 그리고 계약금 주고 왔다는 이야기도 못했다고 했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며칠이 지나고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못 살 것 같다고. 계약금도 포기하겠다고. 물건 다 정리하고 다같이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속상하고 화도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당근에 올려 새로운 구매자를 찾는 수밖에. 역시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리도 조급해졌다.

'이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서울에 가져가서 팔아야 하나.'

'저 큰 장식장은 버려야 하는데 어쩌지.'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빨리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다 정리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하늘도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선물을 보내주셨다. 바로 그 사장님의 전화. 그 후로 며칠 동안 의욕 없이 아픈 사람처럼 가게에 멍하니 앉아 일을 하셨다고. 그 모습을 보신 남편분께서 결국엔 사라고 하셨다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솔직히 이야기해 주셨다. 정말 기뻤다. 우리도 구매자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소품들을 빈 상자에 담을 때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이었다. 1년 동안 우리 품에서 자라온 자식들처럼 애틋하고 사랑했던 물건들이었기에. 좋은 분께 가서 다행이었고 가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소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장님도 소품샵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가게는 이제 소품샵이 아니라 카페로 완전히 바뀌었다. 소품 하나 없는 소품샵이라. 간판만이 소품샵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라니시아 소품샵 & 카페' 이제 우리의 추억 속으로 사라질 그 이름. 하지만 나와 아내 그리고 시아에게 평생 가슴속에 남아 있을 그 이름. 나중에 다시 내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 이름을 쓸 것이다.


'라니시아'


약 한 달 후 가게도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시나 음식점을 한다고 했다. 이제 정말 라니시아의 흔적까지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는 기억하지 않을까.


'옛날에 여기 소품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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