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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14. 2023

졸업여행

유치원에서의 1박 2일

"아빠, 잘 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들어가는 시아.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혼자서 자는 날인데, 그것도 집이 아닌 유치원에서 자는 날인데. 너무나 태연히 들어가 버리는 시아. 바로 유치원에서 진행되는 졸업여행이었다.


졸업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던 원장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들 졸업 앨범과 졸업여행에 대해 의논드리고 싶다고. 많은 어머님들이 유치원으로 오셨고, 아빠는 나 혼자뿐이었다. 근데 이제는 익숙했다. 아내만 시아를 돌보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되는 한 이런 일은 내가 참석하려고 했다. 더 많이 더 깊숙이 시아의 어린 시절을 나의 마음속에 담고 싶었기에.


먼저 원장선생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던 졸업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셨다.

"졸업여행으로 가파도를 가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아이들에게 배도 타고 섬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요"

자신감 넘치고 활기에 찬 목소리로 더 이야기를 하셨다.

"부모님들 중 한 분도 같이 참석하셔서 유치원의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해주셨으면 해요. 아마 아이들도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불안한 듯한 의견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파도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취소되면 어쩌죠? 요즘 바람이 많이 불어 취소되는 날이 많아요."

"가파도는 나무도 거의 없어 허허벌판이라 추울 것 같아요. 바람 많이 불면 피할 곳도 없어요."

"부모님 모두 못 가는 아이는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걱정스러운 듯 많은 의견을 냈다. 의욕적으로 추친하시던 원장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이렇게 반대의견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하셨던 것 같았다.


원장선생님은 제주도가 처음이셨다. 육지에 있을 때 졸업여행을 기차타고 1박 2일도 가보셨다고. 하지만 제주는 틀렸다. 특히 바람 많이 부는 제주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다들 제주에서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아마 원장선생님도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졸업여행을 원하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잠시 제주도에 내려와 사는 가족들도 있었고, 다문화 가정들도 많았기에 더욱더 아이들에게 제주만의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유치원에서 1박 2일 하는 건 어때요? 다른 유치원에서 그렇게도 한다고 하던데요."

한 학부모님이 새로운 의견을 이야기해 주셨다. 원장선생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놀란 표정이었다. 대부분 아이들과 떨어져 보낸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금세 분위기는 바뀌었다. 특히 아이들이 둘, 셋인 집은 대부분 시간을 다같이 보내는데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둘째나 셋째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그리고 친구들과의 하룻밤이 더 기억에 남을 거라고. 매일 낮에만 보는 친구들과 밤새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자는 것이 정말 새로운 추억이 될 거라고.


원장선생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지만 선생님들이 안 좋아하실 거라며 뒤에 서있던 선생님을 바라보셨다. 역시나 선생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손은 아니라고 연신 흔들고 계셨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가파도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다시 다른 곳을 정하자니 시간이 별로 없고, 참석한 부모님들은 대부분 유치원에서의 1박 2일을 원하는 눈치였다. 역시나 며칠 후 연락이 왔고 마지막 졸업여행을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보내게 되었다.


시아는 정말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과 다같이 잠옷을 입고 파자마 파티도 하고, 다같이 떠들다 잠들 수 있기에. 나와 아내 또한 시아에게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다른 곳에서 잔다는 것만 빼고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졸업여행 날.

유치원 가는 길이 어찌나 즐겁던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신난다며 옆에서 떠들어대는 시아 덕분에 졸릴 틈이 없었다. 역시나 유치원 아이들도 모두 신났던지 얼굴 표정이 아주 밝았다. 정규 수업은 그대로 진행하고 저녁부터 다같이 새로운 활동을 한다고 했다. 어떤 재미난 일로 아이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실지 기대됐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너무 허전하고 이상했다. 시아 없이 아내와 나 둘이서 먹는 저녁. 항상 옆에 있어야 할 시아가 없으니 집도 너무 조용했다. 재잘재잘 떠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아가 아른거렸다. 아직 하룻밤이 지난 것도 아닌데. 역시나 시아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시아 어머님 안녕하세요. 원장선생님인데요."

"안녕하세요. 시아에게 무슨 일 있나요?"

"아니요. 시아는 아주 잘 놀고 있고요. 졸업여행 때 저녁에 별 보러 가고 아침에 해 뜨는 모습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운전하실 분이 필요해서요. 혹시 아버님 가능하실까요?"

"그래요? 좋네요. 당연히 되죠. 시아 아빠도 좋아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럼 아버님께 이야기해 주세요."

"예. 걱정 마세요."


항상 시아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유치원에서 하는 상담이나 참여수업에 웬만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시아의 유치원 생활이 궁금했고, 조금이라고 아빠가 시아와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졸업여행에서도 시아와 함께할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제안이었다.


저녁 먹은 후 집을 나섰다. 밤하늘이 구름으로 가득했고 바람도 불어 추웠다. 아이들이 추울까봐 걱정됐다. 하지만 유치원에 도착해 아이들을 차에 태울 때 보니 완전무장을 한 귀염둥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귀여운 털모자에 알록달록한 잠바, 장갑. 차에 타면 더울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밤에도 놀러 간다는 생각에 너무 들떠 더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도착한 금모래 해수욕장에는 역시나 우리 밖에 없었다. 찬 바람을 뚫고 모래사장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데 별이 없었다. 구름도 많고 주변 불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났다. 돗자리 위에 누워 친구들끼리 껴안고 구르고. 별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이 없었다. 이 시간이면 항상 집에 있어야 하는데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나와 있으니 안 좋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이 밤중에. 아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불꽃놀이까지 했으니 신난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추운 줄도 몰랐다. 바람에 날아가는 돗자리 커버를 보고도 소리 지르며 좋아하고, 갑자기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아도 춥다는 소리도 안 하니 정말 아이들은 대단했다.


하지만 아이들 감기 걸릴까봐 오래 있지는 못했다. 이런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같이 차를 타고 유치원으로 돌아갈 때도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집에 가지 않고 유치원에서 다같이 잔다고 하니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시아에게 아빠 간다고 하니

"아빠 잘 가."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들과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황당했다. 그래도 아빠 안아주고 뽀뽀하고 가지 마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나만의 욕심이었나. 허무하게 시아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역시 우리 시아였다.


새벽 6시.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들과 일출을 보기 위해. 원장선생님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1박 2일 동안 많은 이벤트를 준비하셨다. 일출 보는 것도 그 하나. 새벽에 일어나서 가야 하지만 나는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아내는 더 자야 하는데 그 추운데 잠도 못 자고 가는 게 걱정이 되었나 보다. 하지만 또 언제 이런 것을 해 보겠는가. 집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텐데. 그것도 해 뜨는 거 보러 가자고 하면. 더욱더.


눈을 비벼며 하나둘씩 나오는 아이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다들 집에 있으면 꿈나라일 시간에 다같이 손 붙잡고 해 뜨는 거 보러 간다고 나왔으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멋진 추억을 쌓기 위해서 이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어제저녁부터 많았던 구름 때문이었는지 흐린 데다가 비까지 내렸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이슬비를 맞으며 밖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도는 도중 날은 밝아왔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꼭꼭 숨어있던지. 아이들의 아쉬움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것도 잠시. 환호 소리가 들렸다.


원장선생님이 운전하시던 차가 편의점 앞에 선 것이었다. 왜지? 궁금해하고 있던 나에게 원장선생님이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편의점에서 각자 먹고 싶은 간식을 사주신다고. 아이들이 왜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사람당 2,000원에 해당하는 과자를 살 수 있다고 하니 다들 신이 나서 이것저것 골라보며 계산을 하고 있었다. 1,000원짜리 두 개 고르는 친구도 있고 2,000원짜리 한 개 고르는 친구도 있고. 각자 과자를 고르며 셈을 하고 한 개가 좋은지 아니면 두 개가 좋은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10+10보다 1,000+1,000이 더 익숙한 아이들. 이렇게 스스로 마트에 가서 물건도 고르고 계산도 해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과자를 사주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금액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계산해서 구매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삶의 교육이 아닐까.


한껏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자기가 산 것들에 대해 자랑도 하고 친구가 산 것에 궁금해하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힘든  것과 비가 와서 일출을 못 본 것에 대한 아쉬움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과자 하나로. 역시 아이들이었다. 사소한 것에 큰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 내가 배워야 할 점이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간 행복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이들을 보며 다짐했다. 항상 아이들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하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끝났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원장선생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부모님들이 다 오시면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준다고 했다. 얼마나 귀여울까. 한분 두 분 부모님들이 오셨고 나도 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이 앉는 조금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복도에서 엄마, 아빠가 왔는지 계속 보면서 지나갔다. 매일 보는 엄마, 아빠지만 오늘은 하루 보지 않고 오랜만에 보기에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하루의 힘은 역시나 컸다.


드디어 부모님들이 다 오셨고 아이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귀여운 율동과 함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엄마, 아빠의 마음을 녹여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이런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웃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너무나 커버린 시아를 바라보며 '우리 시아 최고'라고 속으로 외쳐보았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을 우리 시아. 벌써 7살이 되어 유치원 졸업여행을 하다니. 많이 해준 것도 없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자기 갈길만 가버렸다. 노래가 끝나고 나에게 안긴 시아. 울컥했지만 마음속으로 울고 겉으론 웃으며 시아를 꼭 껴안아 주었다. 힘들었던 만큼 더 행복한 이 시간. 앞으로 계속 행복한 시간들만 가득했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 돌보느라 고생하신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시아와 손 꼭 잡고 문을 나섰다.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 한마디가 선생님들에게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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