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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16. 2023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여보랑 노는게 제일 좋아

가게가 정리되고 새 주인도 맞이하고. 라니시아와의 작별인사를 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흑돼지 집도 처남에게 이야기한 후 나가지 않았다. 서울 올라가기 전까지 아내와 시아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고.


갑자기 실직자가 되어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아를 데려다주고 아내를 태우고 가게로 향했는데. 가벼워진 몸을 뒤로 하고 허전함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일을 하다가 안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며칠 동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은 나에게 자꾸 신호를 보냈다.

'뭐라도 하란 말이야. 심심해.'

'지금까지 힘들게 일했잖아. 조금 쉬자.'

'많이 쉬었잖아. 이젠 뭐라도 해야지. 이렇게 빈둥대다가 서울 올라갈 거야?'

'그건 아니지. 알았어. 뭐라도 해보자.'

내 마음속에 있는 친구의 잔소리가 나를 깨웠다.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이젠 아내와 가게가 아닌 집, 밖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카페투어. 제주도엔 예쁘고 멋진 카페들이 많다.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지금까지 일해왔던 우리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카페들을 한 군데씩 가보았다. 그리고 사람 일은 모르는 법. 카페를 접었지만 언제 또다시 카페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카페를 돌아다니며 분위기에 취하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꾸몄는지, 이곳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지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형카페, 젊은 부부가 하는 조금한 카페, 제주 고옥을 리모델링한 카페, 특이한 건물로 시선을 끄는 카페 등 가보는 곳마다 특색 있고, 다른 분위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내와 같이 카페를 둘러보고, 커피와 빵 맛을 평가하고, 이 부분은 너무 멋지다, 저 부분은 이렇게 바꿨으면 더 좋았을텐데 등 나름 전문가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계속 이야기하던 중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왜 웃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냥 웃음이 나와서."

"뭐야~^^"

"그냥. 웃기지 않아. 우리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우리  무슨 사업가 같아."

"그렇긴 해. 그래도 배운게 있다고 자꾸 그런 것들만 보이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소품샵과 카페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었다. 시간의 제약, 시아의 교육 문제 등. 만약 아내와 나 단둘이 있었다면 계속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문뜩 들었다.


단둘이 카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냥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남들은 하루종일 어떻게 같이 있냐 하지만 나는 달랐다.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었고 재밌게 보낼 수 있었다. 같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는가. 아내도 카페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 마시는 것 좋아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또 하나 공통점을 만들어 갔다.


두 번째로 한 일은 같이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필드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집 주변 스크린 골프장에서 아내와 둘이 라운딩을 돌았다. 좁은 방 안에서. 예전 태국으로 파견을 나가기 전 아내와 골프 레슨을 받았었다. 같이 필드도 나가고 끝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푸른 잔디밭을 거닐며 같이 골프를 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시아를 가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치지 못했다. 가끔가다 티비에서 골프가 나오면 치고 싶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보, 오랜만에 스크린이나 갈까? 운동삼아?"

"응? 안친지 너무 오래됐는데."

"괜찮아.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몸 풀러 가보자. 자기도 치고 싶어 했잖아."

"그래. 가보자."


이렇게 시작된 골프 투어. 다행히 동네 주변에 스크린 골프장이 많아 여러 군데 많이 다녀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엔 시설도 좋고 가까운 한 곳만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내와의 골프. 매번 해외현장에 있을 때 나만 쳤었는데 (그것 때문에 아내한테 많이 혼났다.^^) 같이 칠 수 있어 행복했다. 역시 배워두길 잘했다.


카페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하니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가끔 안 맞을 때도 있었지만 잘 치면 서로 하이파이브해 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웃고 떠들면 2시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필드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했다. 여기가 어딘가 골프 치기 정말 좋은 제주도 아니던가. 하지만 필드는 나가지 못했다. 시아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제주도에서 필드 나가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으로.


서울로 올라가기 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골프연습장으로 출근했다. 아내도 무척 좋아했고, 나중에 처남까지 같이 치게 되었다. 몸도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처남은 금방 실력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도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셋이서 골프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 한잔을 기울이는 날이 많아졌다. 골프 하나로 우리 가족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특히 시아도 다이소에서 파는 장난감 골프세트를 사 주었는데 자기가 제일 잘 친다고 거실에서 골프채를 휘둘렀다. 공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는 시아가 너무 기특했다. 하지 말고 나랑 놀아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더 좋아하다니. 시아가 크면 셋이서 아님 처남까지 넷이서 필드에 나가 라운딩을 도는 상상을 해보았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상상만 하도 행복했다.


평일엔 시아 유치원에 보내고 아내와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했다. 예쁜 커피숍을 다니고 같이 스크린골프도 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닷가에 가서 멍 때리고. 그동안 고생했던 아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소소한 선물들이었다. 같이 있을 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동안에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아내의 얼굴에 웃음만 가득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여보야, 자기랑 노는 게 왜 이렇게 재밌지?"

"그러게 나도 자기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


서로에게 가장 행복한 말이 아닐까. 함께한 시간이 10년을 넘었어도 한결같이 사랑하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리고 함께하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 앞으로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이 모습을 보고 자라는 시아에게도 그 어떤 교육보다도 값진 선물이지 않을까.


아내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 정도였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짧다면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이 시간이 짧고 길다는 것에 상관없이 내 인생에서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회사에 다니고 시아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다시없을 시간이었고 다시 온다고 해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제주도에 내려온 가장 큰 이유. 지금 난 이 목표를 이뤘다.


가장 행복하고 가장 격하게 같이 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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