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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29. 2023

다시 제주로

역시 혼자는 힘들어

서울살이의 재시작.

아내와 시아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고 혼자 서울에 남아 회사에 적응해 갔다. 1년 반 만에 돌아온 회사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많은 동료들이 나갔고, 팀에도 아무도 없었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어찌 된 일이지.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낯설었다. 격하게 붙어있던 우리에게 이런 시기가 찾아오다니. 혼자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며칠 동안은 '자유다' 하며 즐거웠지만 일주일이 다 되어갈 무렵부터는 외로움이 슬그머니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역시나 난 가족들과 같이 있어야 했나 보다. 저녁마다 영상통화를 하던 모습이,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우리 집에서 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항상 해외로 파견 갔을 때 했던 일인데 이번엔 내가 아닌 아내와 시아가 제주도에 가 있으니.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세상일은 정말 알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여보 우리 짐 어떡하지. 이사업체 쓰기에는 너무 비싸고, 운반만 해주는 곳은 불안하고." 아내가 며칠 동안 계속해서 걱정했다. 그때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 연휴 때 아버지 일 안 하시니까 트럭 빌려서 배 타고 내려갈게. 어차피 설 때 내려가려고 했으니까. 그럼 비용도 아끼고 좋잖아."

"와우. 그런 방법이 있었네. 좋다. 근데 자기가 너무 힘들잖아."

"괜찮아. 난 상관없어."


이렇게 또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었다. 설연휴 때 이사하는 것으로. 하지만 정말 고단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때는 바로 설연휴. 차가 얼마나 많이 막힐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새벽에 출발하려 했지만 배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전날 천천히 항구로 출발했다. 고흥녹동항. 부모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녹동항 근처에 도착하니 다음날이 되었다. 저녁 12시가 넘어버린 것이다. 장장 10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많이 들렀다고 하지만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내 생애 최고로 오랫동안 운전한 날이었다. 정말 녹초가 되어버렸다. 불 켜진 숙소 아무데나 들어가 침대에 눕자마자 뻗어버렸다. 쾌쾌한 냄새와 누렇게 변한 침대도 나를 가로막지 못했다.


여지없이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온몸은 누구에게 맞은 듯 뻐근했고 어깨 위에는 큰 곰이 앉아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다. 눈만 말똥말똥 이리저리 굴리며 시계만 쳐다보았다.

'5분만 있다가 일어나자.' 알람이 울리고 끄고 다시 울리고 끄고를 반복하다 결국 시간을 이기지 못한 채 반포기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시아와 아내를 본다는 생각이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보며 찬물로 세수를 하고 부지런히 옷을 입고 항구로 향했다.


설연휴여서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올 때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역시 명절은 명절이었다. 아무리 명절연휴 때 해외여행을 많이 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먼 제주도까지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주도로 여행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배안에도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빡빡했다. 큰 방으로 되어있는 곳은 누워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으로 가득해 너무 답답했다. 어쩔  없이 밖으로 나왔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다행히 따스한 햇살이 내 몸에 들어와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었다. 잠시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흔들리는 배가 점점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계속 깨지 않고 자버렸으면.


도착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나를 깨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소리가 나의 눈을 꼭 잡고 놓질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시아와 아내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의 눈을 뜨게 하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한 것이었다. 약 한 달 만에 다시 오게 된 제주. 서울보다 따뜻한 날씨가 나를 반겨주었다.


트럭을 몰고 아내와 시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많이 오고 갔던 길이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새로웠다. 차도 바뀌고 내 직업도 바뀌고 잠시 내려온 제주였으니. 저 멀리 산방산이 보였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집에 거의 다 왔으니. 시아와 아내를 다시 볼 수 있으니.

시아와 아내의 손짓이 보였다. 도착할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2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몇 달 만에 본 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시아의 소리침과 포옹은 역시나 나를 가장 행복한 아빠로 만들었다. "아빠~~~~~~~~~~~~~~~~~~~~"


오랜만에 시아를 꼭 껴안고 잤다. 언제까지 내 팔을 베고 내 옆에서 잘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간만큼은 시아에게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팔과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시아. 시아의 체온이 느껴질 때마다 '맞아. 옆에 있어주는게 제일 큰 선물이야. 시아에게.'라고 느낀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허전하고 외로운데. 한동안 시아의 잠자는 모습을 보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스르르 눈이 감겼다.


다같이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날을 기대했지만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뉴스에선 설연휴 마지막 폭설이 내린다는 기사를 계속해서 쏟아냈다. '이번에도 또 못 올라가는 건가' 지난달에도 많은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이번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제주도가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인가. 그렇게 보내기 싫은 건가.


다행히 원래 가려고 했던 날짜보다 하루 전 배표가 남아있었다. 가족들과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이번에 못 올라가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휴 끝나는 다음날 주방 리모델링을 하기로 해서 못 올라가면 모든 일정이 틀어졌다. 배표를 예약하니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올라가야 하다니.


날씨도 좋지 않고 바람도 많이 불고 다같이 어디 놀러 가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다같이 스크린골프장으로 가기로 했다. 시아도 엄마, 아빠가 골프를 좋아하니 자기도 가보고 싶다고. 자기도 진짜 골프채로 쳐보고 싶다고. 다이소에서 산 장난감 골프채로 집에서 계속 연습하던 시아였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좋아해주니 기뻤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다른거 하자고 때 쓸 텐데. 시아가 너무 이쁘고 기특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스크린골프장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시아와 같이 들어가니 사장님도 살짝은 놀란 눈치. 사실 위험해서 시아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는데 아내와 나도 치고 싶었고, 시아도 쳐보고 싶다고 하니 같이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아가 지루해할 수도 있으니 노트북도 챙겼다. 몸을 풀고 있는데 시아가 골프채를 잡고 휘두르고 있었다. 얼마나 귀여운지. 골프공을 맞추지 못해 몇 번이고 휘두르는데 장난감 골프채는 가벼워 휙휙 잘 휘둘렸지만 어른 골프채는 무거웠으니 잘 안 맞는게 당연한 법.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춰본다고 애쓰는 시아가 너무나도 귀여웠다.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건가. 맞추면 기쁘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엄마, 아빠한테 맞췄다고 칭찬해 달라고 하고. 잠깐이었지만 나중에 커서 우리 세 가족 함께 골프 치러 가는 상상을 해봤다. 푸르른 잔디밭에 시아, 아내 그리고 내가 같이 서서 서로의 친 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이었지만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운동을 했으니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 처남가게로 가서 맛있는 흑돼지를 먹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보는 처남과 직원들.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장사는 그동안 어떠했는지, 다시 회사 간 기분은 어떤지.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고기를 잘라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깃집을 떠난지 두 달이 다되어 갔다. 회사원에서 고깃집 직원으로 다시 회사원으로. 이렇게 자주 직업이 바뀔 줄이야. 그래도 고기 자르는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아직도 내 몸에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고기를 집고 가위로 자르는 내가 어색하지 않았다. 처남과 아내도 내가 고기 자르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고 있었다.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인 것 같다. 회사에 가면 바로 그 환경에 적응하고, 고깃집에 오면 다시 직원으로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고 있으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기에. 살아남으려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법이니까. 처음 소품샵을 운영하고 고깃집에서 일했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사장님이 되고 직원이 되었던 그 시간들. 못할 것 같았지만 끝내는 잘 해냈었던 그 시간들. 아마 적응은 항상 우리와 함께 했었던 것 같다. 숨어있다가 언제든 필요하면 나타났으니까.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다. 다행히 눈은 오지 않았고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았다. '진짜 내일 폭설과 강풍이 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잠했다. 하지만 갈 수 밖에 없는 상황. 정말 안 가고 내일 배가 안 뜨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빈 트럭에 남은 짐들을 실었다. 마지막도 처남과 함께 트럭에 짐을 싣고 있었다. 라니시아를 시작할 때 장식장과 진열장 그리고 소품들을 둘이서 힘들게 실었었는데. 또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처남과 한바탕 웃었다. 힘들고 지쳤던 시간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기에. 그 추억을 되새기며 또다시 짐을 싣고 있으니. 상자 하나하나 쌓여갈 때마다 나의 추억도 쌓여갔다. 제주도에서 했던 모든 일이 추억이었기에.


다같이 마지막 점심을 먹고 차에 올라타는 순간. 아내와 시아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아빠 다음 달에 봐."

"그래. 시아 졸업식 때 올게."

"아빠 잘 가 사랑해."

"아빠도 우리 시아 사랑해. 엄마 말 잘 듣고 아프지 말고."


짐이 많아 차도 무거웠지만 내 마음도 무거웠다. 하루 더 있지 못한 것, 또 헤어져야 한다는 것, 또 제주도를 떠난다는 것. 가족들을 두고,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나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내 뒤로 점점 멀어지는 산방산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다시 내려올 날을 기약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그대이기에.


또다시 혼자 배에 올랐고,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이 육지에 도착한 나를 반겨주었다. '올라갈 때는 또 얼마나 걸릴까?' 걱정이 앞섰다. '내일부터 날씨가 안 좋다고 했기에 오늘 밤에 사람들이 많이 움직일 것 같은데.'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단 출발하기 전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신나는 노래를 틀고 출발했다.


역시나 집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쳐야 했고, 다리는 자꾸 힘이 빠져갔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렀지만 내렸던 시간뿐이었다. 다시 차에 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피로와 졸음이 쏟아졌다. 새벽이 되어서야 도착한 집에서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던 나에게 포근한 침대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여보 진짜 어제 안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제주 비행기, 배 모두 결항됐어.'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아내의 카톡이 와있었다. 답장도 하지 않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을 하루 종일 눈 뜨기 싫다.'


설 연휴 때 차를 몰고 배를 타고 제주도를 왔다 갔다 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휴 힘들어 다시는 배 타고 제주도 안 가!' 생각뿐이었다. 내 인생 최고로 운전을 오래했고, 많이 배를 타봤고, 이삿짐도 날라봤으니 이번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서울과 제주도. 내 마음속엔 바로 옆에 있지만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금방 갈 수 있다고, 힘들지 않다고 자신만만했던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고마워, 이젠 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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