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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22. 2023

서울 상경

한순간의 꿈

제주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예약해놓은 비행기표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집안의 짐들이 점점 가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울로 가져가지 못하는 물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 제주도에 더 살라고.


처남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구나.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이야.' 정말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가 버렸다. 이곳으로 가게를 옮기고, 가게를 꾸미고, 가게를 운영하고, 가게를 정리하고,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고, 즐거운 일, 행복한 일들도 많았던 모슬포, 라니시아. 눈물이 날 껄만 같았다. 내 자식과도 같은 우리 가게였는데.


제주도도 우리가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야하는 그날 전부터 엄청난 바람과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결항될 확률이 크다고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걱정하던 우리에게 항공사에서 결항 문자가 왔고, 다시 예약하려면 항공사로 전화를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통화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아내와 내 핸드폰 모두 통화대기음만 계속해서 울려퍼질 뿐이었다. 다행히 당장 내일 올라가야하는 것이 아니어서 마음은 급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연결이 되지 않으니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보다 급한 사람들이 훨씬 많을텐데. 양보한다는 샘치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폭설이 내린 아침. 시아를 유치원에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유치원에 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시아는 꼭 간다고, 가고 싶다고 일찍부터 일어나 나를 깨웠다.

'그래, 서울 못 올라가는데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다와.' 이 생각이 나의 몸을 일으켰다. 오늘부터 유치원에 안나온다고 했는데 원장선생님도 예상하셨는지 평소와 똑같이 시아를 맞이해주셨다. 제주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탈출을 못했으니까.


시아를 데려다주고 아내와 나는 눈 쌓인 밖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통화할 수 있겠지.'

따뜻한 커피가 차가운 몸속으로 들어와 내 몸을 휘저었다. 역시 커피는 또 다른 나의 피와 같았다. 온몸을 흘러 몸을 깨우는 피와 같이 커피 또한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의 모든 세포들을 깨웠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통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나 나의 예상의 적중했고 어렵고 통화된 상담원과 이틀 뒤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우리도 힘들게 기다렸지만 상담원은 더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목소리를 통해 느껴졌다. 고생하신다 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맘편히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맛.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커피맛. 커피가 나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제주생활이 이틀 늘었다. 크리스마스를 서울에서 친구들과 보내려 했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주도에서 보내라고 그랬던 것 같았다. 제주에서 보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특별한 건 없었지만 처남과 함께 조금한 케익을 사서 크리스마스의 밤을 보냈다.


집을 나서는 나의 손이 가벼웠다. 나만 서울로 완전히 올라가는 것이었기에. 시아와 아내는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제주도에 있기로 했다. 그렇기에 짐은 대부분 내것이 전부였다. 시아와 아내 짐은 며칠동안 지낼만큼만. 처남이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항상 제주도 주변을 돌아다닐 때 같이 탔는데 이번엔 내가 떠나는 것을 배웅해주기 위해 처남이 운전대를 잡았다. 항상 우리를 걱정해주고 챙겨주었던 처남.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미안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줘서 항상 고마웠다.


서울은 역시나 제주도보다 추웠다. 하지만 집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다. 왜 이제 왔냐며 투덜대는 아이처럼 집안의 모든 것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갇혀있던 티비, 쇼파, 책 등 밝은 세상으로 나오니 더 화려해지고 환해져 나를 봐달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진짜 우리집이었다. 제주도에서 1년 넘게 살았지만 항상 내집은 여기, 서울에 있는 이 곳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힘들게 고생해서 마련한 우리의 첫 집. 이젠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 계속 이 집에 머물며 또 다른 행복한 나날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회사에 다시 복직을 하고, 시아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으러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연락해 약속을 잡고. 1년반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연극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불이 꺼지는 것처럼 펑펑 내리는 눈은 우리의 다음 장면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바람도 불지않는 밤, 둥둥 떠다니는 듯한 눈들이 하염없이 온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바닥에 누워 천사를 만드는 시아를 보면서

'그래, 잘 올라왔다.' 이 생각 뿐이었다. 밤에도 아무 걱정없이 이렇게 놀 수 있으니.


아내와 시아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환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안정된 생활이 우리의 겉모습까지 바꿔버렸다. 시아는 그동안 친구들과 못 놀았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이 열정적으로 친구들과 놀았고, 매일매일 매출에 신경쓰지 않고 집안일을 할 수 있으니 아내도 너무나 행복해했다. 나 역시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해서 다같이 저녁을 먹고 시아와 놀 수 있으니 더 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꿈이었을까. 너무나도 제주도 생활이 꿈만 같았다.

"우리 정말 제주도에 있었던 거 맞아?"

"그러게 그냥 잠깐 놀다 온거 같애."

순식간에 익숙해져버린 서울 생활. 주말을 제주도에 있다가 월요일이 되어 다시 회사에 출근한 기분이었다. 너무 예전 생활이 그리워서 그랬을까. 제주도에서의 힘들었던 기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원래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는 다른 곳에 가지 안기로 마음먹었다. 이젠 여기서 쭉 살고 싶었다. 삶에 변화도 중요하지만 갑작스런 큰 변화는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기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며 살기로 했다. 이젠 역마살에서 벗어나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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