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기억에 남는 선생님
선생님은 이름이 쉽게 사라져 버리는 직업 중 하나다. 그저 '선생님'으로 편하게 불리거나 과목명이 이름 마냥 붙어 '영어쌤' 같이 불리기 마련이다. 반이 바뀌고 졸업을 하고 때론 선생님이 떠나면서 제대로 된 작별을 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게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진하게 남아 있는 세 분의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이 따뜻한 존재라는 걸 처음 알려준 분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전학 온 새로운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몸을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뵙지 못했다. 잠시동안 그 자리를 맡아주고 계셨던 젊은 여자 선생님을 '우리반 쌤'으로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첫 제자라고 하던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에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 주셨다. 세세한 행동이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선생님은 손수 쓴 편지를 아이들에게 주기도 하며 애정을 듬뿍 나눠 주셨다. 선생님의 마지막 근무날에는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오열하며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선생님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한다. 비록 기억 속에서 선생님의 이름은 흐릿하지만 이제는 나보다 더 앳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내 추억 속에는 남아 계신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선생님은 우정을 쌓는 걸 알려준 과학실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과학실 청소를 담당하였는데 청소를 검사하며 과학실을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몸집이 제법 큰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손재주가 참 좋으셨다. 과학실 귀퉁이에는 성인 두 명도 눕기 힘든 좁디좁은 선생님의 전용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십자수라는 걸 처음으로 알려주셨다. 이후 우리는 청소 검사를 다 맡고서도 집에 가지 않고 선생님의 공간을 아지트 삼아 십자수를 놨다.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선생님에게 배우고 나서 학교 앞 편의점으로 가 컵라면을 먹는 게 우리만의 코스였다.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자수를 놓은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받으면서 친구들과 서로의 정성을 알아봐 주는 그 마음을 배웠다. 친구들이 좋아졌다. 저마다 미루기 바빴던 과학실 책상마다 있는 거름망 오물 청소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서 끝내고 십자수를 하러 가야 했다. 선생님, 친구들과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하기 싫던 일도 해내버리며 우정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과학실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고2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수학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학원에서 인근 학교와 우리 학교 이름의 앞글자를 딴 '신양반 수학 선생님'으로 불렸다. 나는 고1 때 도형을 거치며 수학과 벽을 쌓게 되었고 원리는 모르고 요령으로만 수학을 대충 푸는 학생이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점수를 깎아먹는 내가 안타까웠던 건지 선생님은 어느 날 나를 남겼다. 텅 빈 강의실에 나만 남겨두고서 기초인 근의 공식을 완전히 풀어서 설명해 주셨다. 나는 2ab 어쩌구 하며 근의 공식을 축약해서 활자로 외워도 a가 뭘 뜻하는지를 까먹어서 공식 자체를 적용 못하는 바보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문과 맞춤형으로 오히려 공식을 풀어서 ‘2 곱하기 앞항 뒷항’ 식으로 설명해 주셨다. 톱니가 움직이듯 멈춰있던 공식이 원리와 함께 머리로 들어오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공식을 외우면서 선생님의 손 제스처까지 따라 하다가 보았는데 선생님의 엄지 손가락 하나가 반토막이 나있었다. 꽤 오래 봐온 선생님이었는데도 분필 쓰는 모습만 보았지 가까이에서 본적은 처음이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 놀랐지만 애써 숨기며 수업을 이어갔다.
유쾌하게 수학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처음으로 수학이 재밌었다. 선생님과 같이 공식을 문장으로 풀어 외우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문제를 푸니 수학 문제를 풀어나갈수록 희열이 느껴졌다. 그렇게 고 2 때 내 성적은 상승에 상승을 이어갔다. 수학이 오르니 영어가 오르고 국어도 오르고 모든 과목이 덩달아 올라갔다. 수학 시험을 치면 기쁜 마음으로 시험지를 가지고서 선생님께 뛰어갔다. 같이 기뻐하고 오답을 체크하고 또 다음 수학 전쟁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개념과 잔실수 하지 않을 비법을 잔뜩 머릿속에 넣어주셨다.
아쉽게도 선생님과 어떻게 끝맺음을 한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느 학원 선생님들처럼 어느 날 계약만료나 이직이라는 사유로 사라지신 건지 아니면 내가 학원을 그만뒀던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앉혀두고 수업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이름 석자를 모른다. 가까이에서 내게 헌신해 주시는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소중함을 몰랐던 탓이다. 이름 석자, 선생님은 어떤 사연으로 선생님이 되셨는지, 손가락은 왜 그런 건지 궁금한 게 많았는데 입시와 성적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마였던 시기라 어느 것 하나 물어보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름이 뭐예요?”라고 10초면 되었을 텐데 여쭤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내내 후회되고 마음에 남는다. 한 번쯤 찾아뵙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학원도 사라져 선생님은 공허하게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선생(先生)님의 뜻이 ‘앞서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랐다. 내게 선생님은 학교에서 지식을 알려주고 평가하는 사람으로서 위엄이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그 뜻은 정반대였다. 내가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교과목 지식을 열정을 다해 알려주셨고 그분들의 이름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정말로 마음에 울림을 준 선생님들은 ‘앞서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 진심을 다해 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을 알려준 분들이었다. 좋은 선생님들에게서 잘 배운 덕분에 지금의 나로 성장하였다. 비록 이름도 기억 못 해서 감사한 마음 직접 전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따뜻함을 배웠다고 외쳐본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못골 글 보러가기 : 부고를 보내지 말아라 https://brunch.co.kr/@ddbee/88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https://brunch.co.kr/@ddbee/89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이름을 잃어버린 선생님들 https://brunch.co.kr/@ddbee/90
못골, 흔희, 아난의 글을 한 달에 2번 뉴스레터 땡비로 받아보는 거 어때요?
- 땡비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35860
- 지난 글 보러가기 : https://ddbee.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