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아닌 여러 교훈!
제가 중학생 때쯤 되었나 싶은데 전국적으로 프로권투의 인기가 참 대단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헤비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나중에는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는 뉴스 축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 빠른 발과 기교의 권투가 동방의 작은 나라에까지 큰 여파를 남깁니다.
미국 선수들이야 애초부터 중량급(重量級) 선수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우리는 중량급(中量級) 또는 경량급(輕量級) 선수가 더 큰 활약을 낼 수밖에 없었고 챔피언만 오르면 큰돈을 벌 수 있다던 소문이 나면서 소위 hungry boxer의 행렬이 체육관 앞을 메웠고 실제 세계를 제패하던 일도 종종 생겼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인기는 올림픽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이후에 권투는 메달획득의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올림픽에서 메달이라도 따게 되면 다른 선수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그리고 훨씬 빠르게 프로 입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기는 88 서울올림픽 이후로 서서히 하향길을 이루었고 프로권투의 인기와 관심은 물론 올림픽에서조차 더 이상 메달 사냥의 선봉에 서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 세대에는 프로권투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추억을 지니며 살아왔습니다.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의 기억도 살아있는 반면, 故 김득구 선수의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권투라는 경기가 태생학적으로 누군가를 눕혀야만 더 큰 환호를 받기에, 시작부터 약간의 잔인함을 갖고 시작합니다. 사실 레슬링이나 여타 격투기에 비해 인기가 많은 데에는 이런 이유가 존재할 것입니다.
인간은 왜 이런 격투기에 열광하는가? 단순히 대리만족으로 설명되는가? 이런 질문은 고래(古來)로 이어져 오는 오래된 질문일 것입니다. 이는 작금(昨今)의 조폭 영화, 일진 영화는 물론 전쟁 관련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명제일 것입니다. 이런 질문 뒤에 필연적으로 나오는 회의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UFC의 인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스포츠만 그러할까요? 아니요. 요즘 유행하는 게임도 그러합니다. 가상 세계의 게임은 폭력적인 건 물론이거니와, 선정성까지 덧붙여집니다. 이런 요소가 더해지지 않으면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재미나 오락으로만 끝날까요? 대답은 뻔합니다. 현실에 반영될 확률이 엄청 높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어른은 물론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물려줄 것인가? 내게 남아있는 것 중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무술이 호신(護身)의 도구가 되고 징악(懲惡)의 방편이 되며 더 나아가 무도(武道)의 반열이 되는 그날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