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지 않으면 좋겠다, 친구야.
삶을 살아가면서 내게 익숙한 그 무엇을 끊는다는 것은 마치 가위나 칼로 자르는 것과는 사뭇 다를뿐더러 비장한 일일 수 있습니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술과 담배, 도박, 음란 뭐 이런 공개적인 어려움 이외에도 사람과의 관계, 더 나아가 종교적인 일까지 그 범위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젊을 적 일입니다.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을 알기에 한 동기가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교회를 끊으려고! 괜찮을 것 같아?” 순간 생각이 막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생각을 묻는 건가? 아니면 그 후에 닥칠 후환을 두려워해서 묻는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대답을 어떻게 해주어야 현명한 대답이 될지 그 짧은 순간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냥 내 대답은 이랬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신앙은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그리 믿어. 다시 오려다가 실패해도 이미 네 마음에는 신이 계신다는 얘기야. 그리고 내가 아는 신은 네가 떠났다고 해서 보복하는 분은 아니야. 그냥 기다리실 뿐이지!”
그 대답이 현답(賢答)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우답(愚答)이 되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우리는 졸업을 맞았고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잘 모릅니다. 동문회에도 잘 나타나지 않고 그리 소식을 모르고 지낸 지 오래됩니다.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많이 고민했구나! 마음이 많이 긁혔구나. 그냥 보듬어주면 더 나았으려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일어서는데 필요한 과정이기는 하겠다 싶습니다. 그냥 내 위안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들어 그 친구가 안쓰럽고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모든 게 당연한 줄 알고 평탄하게 믿어온 저에게는 이런 친구들이 많은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젊은 날 아무런 굴곡 하나도 없이 신앙을 유지하다 맞는 신앙의 사춘기가 조금은 버거운 요즘입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가? 이렇게 하는 게 옳은 길인가? 조였던 혁대를 조금 풀어주고 싶다, 조금 더 앉아있고 싶고 조금 느슨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 들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빨리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는 것뿐입니다. 이 과정이 고도를 바꾸려는 비행기의 움직임인지, 아니면 기류에 흔들리는 기체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영(靈)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시끄러운가 봅니다.
젊을 적 내 친구가 했던 비슷한 부류의 고민을, 나이 들어서 하는 내 친구의 친구인 나를 봅니다. 물론 내 기체(機體)는 다시 제자리를 잡으리라는 확신 정도는 있습니다. 그게 언제일지도 모르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내 친구의 안부를 한번 추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