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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Jul 09. 2024

사전을 씹어먹던 시절.

하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보다는 최근이죠.

(이미지출처:이투스247강북점 공식블로그)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죠.^^


중, 고등학교 시절 영어를 처음 접하면서 거의 경전(經典)이나 성구(聖句)처럼 듣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배 중의 아무개는 영어사전 한 권을 통 채로 외웠다더라! 하지만 이 말이 곧이곧대로 그리고 싱겁게 끝날 리 만무합니다. 한 장을 다 외우면 그 장을 찢어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는 겁니다. 어릴 때 든 생각은 대략 몇 가지입니다. 그게 가능해? 진짜라면 끝까지 했대? 그 정도면 전국 수석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니면, 그 선배 혹시 염소띠야? 배는 안 아팠대? 그 정도의 의문은 늘 곁을 맴돕니다.     


영어사전은 민중서관(우리 학생 때의 이름이지요,)이 좋으냐? 동아 출판사가 좋으냐? 갑론을박하던 시절, 친구들에게 대세는 단연코 민중서관이었습니다. 사실 그 판단기준이 우리의 체험에서 결정된 건 아니었고 그저 선생님이나 선배, 가까이는 집안의 형이나 누나의 조언이 더 컸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물론이요, 주변에서의 사전 선물도 대부분 민중서관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조언은 늘 한 가지로 모입니다. 뭐든지 잘만 활용하면 돼, 이 녀석들아!     



집에는 늘 영한사전, 한영사전, 국어사전 정도의 사전이 늘 책꽂이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사전을 펼쳐보는 일이 일 년으로 따져봤자 몇 번 되지 않을 정도로 뜸했습니다. 가장 손이 덜 가는 사전은 아무래도 국어사전이겠지요.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옥편(玉篇)도 손이 많이 안 가기는 비슷할 것입니다. 중학교 때 한문 시간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선생님께서 어느 날 옥편 하나씩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특별히 출판사를 지정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에는 다양한 색과 서로 다른 두께의 옥편이 들려 있었습니다. 부수와 획수로 찾는 방법을 익히고 나서 느낀 점은 한글과 영어가 참 편리한 글자이구나!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드는 생각이 있다면 한자(漢字)가 함축적인 문자이구나!입니다.          


본래 인간이 소통을 위해서 고안한 글자와 언어는, 거꾸로 언어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언어는 문학이 되고 때로는 철학과 인문이 되는 시절입니다. 이런 소통의 도구가 그 수가 점점 많아지고 현학적(衒學的)으로 변하다 보니 내재(內在)된 의미와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로 인한 학파(學派)가 발생하고 파벌이 조장되기에 이릅니다. 자칫 이것이 불통(不通)으로 회귀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사전이라고 이름하는 책이 제 책꽂이에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나 PC만 있으면 모든 게 검색되는 세상에 사전의 역할을 국내외 유수의 포털사이트가 담당하는 세상이니 사전의 매력을 이야기하면 아날로그의 끝판왕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요즈음에도 민중서관이 있는지조차 모를 뿐 아니라 동아 출판사가 두산으로 넘어간 사실도 세월이 지나고서야 알았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대의 반영은 충분히 된 셈입니다.     


잠시 검색하다 보니 영어사전의 대명사로 불리던 Oxford 영어사전도 절판되리라는 기사가 2010년 8월에 올라왔으니, 예정대로라면 이미 절판되고도 10년 이상이 지났고, Hornby 영영사전 또한 어찌 되었는지 내내 궁금해집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이마저도 새로운 형태로 바뀔 것이고, 흔히 쓰이는 단어나 관용구마저도 그 의미가 바뀌기도 할 것입니다. 부디 제가 바라는 건 이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여기는 건 바뀌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제게는 주님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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