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당신!
우리 부부는 서로 특별한 호칭이 없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여보, 당신이라 불러본 적도 없거니와 특별히 노력해 보지도 못한 채 서로 환갑을 넘겼습니다. 결혼 전에도 서로 이름만 부를 줄 알았지, 애칭으로 부르거나 사랑스럽게 불러본 적 없는 사이로 지냈습니다.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월을 보낸 셈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냥 어이! 날바(날 봐)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중에야 이게 참 삭막한 호칭이로구나! 싶었지만 당신 세대에는 그러려니 했을 뿐입니다.
제 처가의 장인 장모님께서도 고유의 호칭이 없으시지요. **아빠, **엄마라고 부르시는데 내 아내가 맏이이다 보니 **에는 제 아내 이름이 들어갑니다. 동생이 아무리 아들이라 하더라도 여태껏 서로를 그렇게 부르십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보다는 조금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인 장모님의 호칭 체계가 조금 나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상하신 대로 우리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도 외동아들의 이름을 넣어 ##아빠, ##엄마라고 부릅니다.
언젠가 우리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네는 나이도 젊으면서 여보, 당신 소리를 아직도 못 배웠냐? 우리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너네는 그렇게 불러 봐! 대답은 네! 하고 순종하는 시늉은 내었지만, 그 또한 대답만 그리했을 뿐 고치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 말씀이 맞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리 생각하기에 고쳐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정착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부부들이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예뻐 보이기도 합니다. 참 잘했다 싶기도 하고 호칭을 참 참 잘 배웠구나 싶은 게 그리 좋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냥 호칭 체계만 보아도 둘이 잘 살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부부도 많지요. 서로 야! 쟤!라고 부르는 부부들을 보면 아닌 말로 참 천박해 보입니다. 어차피 부부는 동체(同體)인데 그런 방법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환갑을 넘기고 결혼 생활도 30년 이상을 넘기다 보니 아쉬운 날이 더 많은 듯하여 후회도 밀려오는 중입니다. 서로 싸우고 제대로 화해를 못 했던 날들, 시부모라는 큰 그늘에서 제대로 가림막조차 돼 주지 못한 일들, 변변한 선물 하나 못해 주었고 생일에 미역국 한 번 끓여주지 못한 일들,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아꼈던 지난 세월, 생각해 보면 내 못난 세월의 자국들이 너무나 큽니다. 만약에 서로의 호칭에 내 마음과 정성이 담기는 거라면 그때처럼 되는 대로 호칭을 정했을까요? 아니 불가피하게 그랬을지라도 지금까지 그 호칭을 유지하면서 지냈을까요?
생각해 보면 뭘 그리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눈치, 주변 지인들의 눈치 등등 그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이 어떻다고 그거 하나를 못 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여보, 내가 참 미안합니다. 한 번도 넓은 마음으로 당신을 품어주지도 못하고 내 고집대로만 살았군요. 그러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더 큽니다. 다가올 노년은 예쁘게 잘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