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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과 뚱뚱

그 선을 넘은 자의 어려움

by 김욱곤
(Get Image from Pinterest) 아이고 이런!


나이가 들고 제 전공 분야에서 수십 년 경력을 쌓다 보면 모든 경우에서 통달해 있을 듯하지만, 여태껏 가끔이나마 식은땀이 나고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 실력의 얕음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해부학적인 이유, 생리학적 급박함, 또는 약리학적 부작용 등이 저를 힘들게 하곤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일이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올해(2025년) 1월의 일입니다. 오른쪽 상완골(上腕骨)이 골절되어 수술받으러 오신 여자분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나이는 37살이니 젊어서 가진 질병은 거의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뜨악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키 163cm에 몸무게가 무려 132kg이었습니다. 수술실 침대가 작았으며 그냥 누워있는데도 동산이 있는 정도로 보였고 나중에 마취에서 깨어날 때 호흡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투여하는 약물의 양은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종일 그분 걱정만 하며 보낸 듯합니다.



수술도 잘 끝나고 마취에서 회복도 잘되어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올라간 그분의 이름이 수술신청서에 다시 뜬 날은 다음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시행자가 제 이름으로 되어있었고 주치의에게서 간곡한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어제 확보한 혈관이 부어서 다시 혈관을 확보하려 했지만 도저히 잡을 수 없으니 중심 정맥 카테터를 시행해 주십사는 부탁이었습니다. 항생제도 주입해야 하고 수액도 주입해야 해서 혈관 확보는 필수적인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수월하게 시행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잘 확보되리라는 확신도 없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풀기 어려운 과제를 떠안은 셈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시술은 잘 끝났고 예정대로 퇴원도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병실로 보내면서 저는 환자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일단 100kg 밑으로 감량하자, 한번 탄력 받으면 쉽게 빠진다, 그러니 시작해 보자고 부탁하니 다음에 못 빼러 올 때는 반드시 살을 빼서 오겠다며 결기 있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제게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얼마 전 4월 중순에 수술실에 들어간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수술한 자리에 문제가 생겨 조정하러 왔다는 그 환자는 바로 그 여자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체중이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단 하나도 줄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더 늘지 않았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날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중심 정맥 카테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다행히 잘 거치가 되었고 몇 달 전 다짐했던 그대로 다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약속을 받아 낼 때만 해도 믿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믿음의 농도가 희석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비만이라면 저도 만만치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적으니 오래전 이야기인 듯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꽤 힘들었지만, 다시 요요가 올지도 몰라 지금도 노력 중이기에 체중감량이 참으로 힘든 일임을 저도 잘 압니다. 저도 젊은 날에는 불편 없이 잘 지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 낼 뻔뻔함만 조금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중년으로 갈수록 제 몸은 하나하나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제 아내가 그렇게 부탁하고 달래도 우이독경(牛耳讀經)처럼 흘려보냈을 뿐입니다. 요즘은 그런 진심을 흘려보냈다는 게 그리도 후회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제 아내는 제가 얼마나 미웠을까요?

제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그분에게 드린 조언은 진심입니다. 마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입니다. 수술은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만에 하나 그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제 나이가 들수록 비만이 촉발제가 되어 다른 질환에 속속 노출되게 될 텐데 그때는 또 어찌할 터인가? 우선 당장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꽂힐 텐데 그것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등 고려하고 견뎌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그 일이 있던 날, 퇴근하자마자 아내에게 나의 고집과 불찰에 가볍게 사과했습니다. 젊은 날, 체중감량에 무심했던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이제 조금 살이 빠지고 주변 사람들이 최소한 덩치 때문에, 뒤돌아보지 않는 정도가 되어서야 내 과거가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그분도 그리될 것입니다. 요즘 들어 비만이라 단정할 만한 환자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이겠지요. 그만큼 마취하는 데도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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