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차 타고, 생각 타고

친숙과 예측, 그 사이

by 김욱곤
(Get image from blog 사주의 신: 운치 있죠?)


태어나서부터 어찌하다 보니 기차와 인연이 깊은 곳에서 종종 살았습니다. 예전에 이리(裡里)라고 했던 익산이 고향이고 대전, 천안 등등 철도의 주요 역이 위치한 곳에 거주했고, 그렇지 않으면 기차역 근처에 살았다든지 등등, 아무튼 이 정도면 가히 친한 정도는 되는 셈입니다. 하기야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기차,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이 시외를 연결하는 주요 운송수단이었고 자라면서 그 덕을 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완행이니 급행이니 구분하던 시절을 지내고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 시절을 지내더니 이제는 KTX, SRT, GTX, ITX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양한 운송수단 때문에 승객이 감소하리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의 수는 그다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역사(驛舍)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외지(外地)로 출퇴근하던 시절, 그리고 기러기 생활을 하던 시절, 기차는 저의 발이 되고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다지 연착하지도 않고 약속한 시각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신실함, 그리고 여유로움 등으로 나와 함께 한 벗입니다. 그러다가 직장 근처로 이사 오고 가까운 거리에서 출퇴근하면서 기차는 그저 집 근처를 지나는 낭만 정도로 남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KTX 역이 있어 멀어지지 않은 친구처럼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오늘(2025.04.19)은 서울의 연세대학교에서 학회가 있어서 교육받으러 상경(上京)했습니다. 오랜만에 제 전공에 관련된 학회여서 살짝 기대되기도 합니다. 제가 거창하게 기차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차를 가져오지 않고 KTX를 타고 왔기 때문입니다. 아예 길을 나서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오죽하면 너무 짧은 시간 밖에 타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기차를 탈 때마다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합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그 감정을 남들도 느낄까요? 물론 모두 같지 않을 것이고 그 다른 감정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이쯤 되면 나와 같은 느낌, 동일한 생각을 가진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정말 반가울 거 같단 생각을 늘 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넘어가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디젤기관차에서 KTX, SRT로 넘어왔지요. 다음에는 어떤 형태의 기차가 저를 맞을까요?

요즘 세대에게 기차는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일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시절이 바뀌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의 모양이 바뀌고 형태가 바뀌고 기능이 추가되며 심지어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합니다. 구닥다리라서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던 것들이 복원되어 향수를 자극하고 더 나아가 상한가를 치기도 합니다.

나는 그대로 나이만 들어가는 노인으로 변할까요? 오늘 학회에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의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기차로 대입하자면 어느 기관차를 장착한 기차로 여길까요? 비록 나의 생각이지만, 오늘만큼은 아직 녹슬지 않은 현역임을 강조하고 싶은 날입니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시는 모양입니다.


keyword
이전 15화통통과 뚱뚱